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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골프장에서 피어난 네팔 소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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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골프장에서 피어난 네팔 소녀의 꿈

입력
2017.03.3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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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주니어 골프선수 프라티마 셰르파와 그의 부모. 팀프라티마 공식 홈페이지
네팔 주니어 골프선수 프라티마 셰르파와 그의 부모. 팀프라티마 공식 홈페이지

네팔 카트만두 시내 외곽에 있는 왕립네팔골프장은 네팔인들의 ‘성지’다. 빼어난 시설 때문이 아니다. 2015년 4월 9,000여 명이 사망한 7.8규모의 네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수십 대의 헬리콥터가 필드를 오르내렸다. 골프티 대신 피난 텐트가 빼곡히 들어섰다. 그렇게 골프장은 2,000 여명 네팔인들의 ‘난민 수용소’가 됐다. 이 ‘절망의 골프장’은 네팔 최초의 여성 프로골퍼를 꿈꾸는 18세 소녀의 집이기도 하다. 22일 미국 스포츠 매체 ESPN은 네팔 주니어 골프선수 프라티마 셰르파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관련기사

프라티마의 부모는 골프장에서 잔디를 깎고 볼을 줍는다. 하루에 받는 돈은 2.5달러(약 2,800원). 대신 4번 홀 근처의 창고를 집으로 쓰고 있다. 침대 두 개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화장실 크기만한 창고에서 프라티마 셰르파가 태어났다. 골프장에서 나고 자란 그가 골퍼의 꿈을 꾼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골퍼들의 스윙을 흉내 내는 게 일상인 11세의 프라티마에게 네팔의 프로 골퍼 사킨 브하타라이가 안 쓰는 골프 클럽을 선물했다. 프라티마의 첫 골프채였다.

네팔 내에서의 성적은 빼어나다. 이번 시즌에만 아홉 번의 토너먼트에서 일곱 번 우승했다. 한 달 전 네팔에서 열린 칼스버그 클래식 투어에서는 한 라운드에 4개의 버디를 잡아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코치 브하타라이는 “프라티마는 ‘킬러 스윙’을 한다”고 치켜세웠다.

네팔왕립골프장에서 연습하는 프라티마. 팀프라티마 공식 홈페이지
네팔왕립골프장에서 연습하는 프라티마. 팀프라티마 공식 홈페이지

프라티마는 ‘변화하는 네팔’의 상징이기도 하다. 네팔은 불과 10년 전에야 입헌군주제를 폐지했다. 2015년에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도 탄생했다. 240년 간 여자에게 교육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던 네팔에서 프라티마가 프로 골퍼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이유다. 현재 네팔에 등록된 약 90명의 프로 골퍼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프라티마의 ‘키다리 아저씨’는 미국의 유명 캐디 올리버 호로비츠다. 그는 지난해 네팔에서 라운딩을 하던 도중 퍼팅을 연습하는 프라티마를 보고 기꺼이 그녀의 캐디가 됐다. 호로비츠는 미국에 돌아간 뒤 후원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프라티마의 이야기를 전세계로 알리고 있다. 그는 “프라티마는 내 골프인생에서 가장 큰 영감을 준 영웅”라고 말한다.

올해 프라티마는 중국에서 열리는 ‘팔도 시리즈 주니어 토너먼트’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지만 포기했다. 팔도 토너먼트는 세계 주니어 골퍼들을 발굴하는 등용문이다. 그러나 골프장에서 태어난 프라티마는 출생신고가 안 돼 있어 여권이 없었던 것. 이 소식을 들은 미국 관계자가 입양을 제안했다. 프라티마는 이 무례한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프라티마의 꿈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네팔 대표로 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 실력이 모자라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골프채를 휘두르는 순간뿐입니다.” 그래서 카트만두 거리와 철제 펜스 하나로 구분된 네팔왕립골프장에서는 늘 프라티마의 연습 장면을 볼 수 있다. 올림픽 출전 꿈을 위해 3개월간 지속되는 우기에도 프라티마의 퍼팅은 계속되고 있다.

오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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