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마린호에 실린 세월호
목포신항 향해 마지막 105km
좁은 해역 무사 통과하며 순항
예정보다 1시간30분 빨리 도착
초대형 운송장비 462대 투입
6일쯤 철재부두에 선체 거치
선체조사위 “만장일치 절단 반대”
수학여행에 들뜬 학생들을 싣고 출항했지만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며 295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세월호가 31일 오후1시 전남 목포신항으로 돌아왔다. 2014년 4월15일 인천항을 떠난 지 1,081일만이다.
지난 22일부터 열흘간의 인양 과정을 거친 세월호는 이날 오전 7시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세월호를 갑판에 실은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호’가 출발을 알리는 검은 연기를 내뿜자 배 뒤편으로 거품과 물결이 일었다. 해경 경비함정 5척이 반잠수선을 호위했고, 단원고 학생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48)씨 등 4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탄 무궁화 29호도 세월호를 뒤따랐다.
마지막 항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반잠수선은 동ㆍ서거차도와 맹골도 사이를 지나 가사도, 율도, 시하도, 달리도 인근 해역을 거쳐 목포신항까지 105㎞를 나아갔다. 달리도 해역은 폭이 600m에 불과할 정도로 협소하고 평소 조류도 강해 길이 216mㆍ폭 63m에 달하는 화이트마린호가 무사히 초행길 운항을 마칠 수 있을 지 우려도 많았다. 야간 운항 대신 주간 운항을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족들의 애타는 기다림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항해는 순탄했다. 세월호는 당초 예상보다 1시간30분 빠른 오후1시 목포신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30분 뒤 드디어 부두에 접안됐다. 도선점이었던 가사도에서 승선한 정경배 도선사는 “조류를 타고 들어오는 ‘순조’였기 때문에 예정보다 빨리 들어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 23년간 바다를 헤친 세월호의 항해는 마침표를 찍었다. 1994년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건조된 세월호는 2013년 3월 한국으로 건너와 ‘세월호’라는 새 이름으로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됐다.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는 2014년 4월 15일 오후9시 인천항을 떠났다가 16일 오전8시50분쯤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인근에서 급변침 후 침몰했다. 지난 3년간 세월호는 무책임한 정부, 탐욕스런 해운사의 이기, 갈라진 광장 등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세월호는 앞으로 반잠수선에서 육상으로 옮겨진다. 오는 3일까지 초대형 구조물 운송장비인 모듈 트랜스포터 462대가 목포신항에 결집한 뒤 시운전(2~3일)을 거쳐 6일쯤 세월호를 철재부두에 거치하게 된다. 해양수산부는 반잠수선과 부두의 단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4월 첫째 소조기(조수 간만의 차가 적어 유속이 느려지는 시기)인 4~8일 거치 작업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반잠수선 갑판 위 펄 제거 및 보존과 선체 위해도 조사, 방제 작업도 이뤄진다.
9명의 미수습자 수색과 수습, 참사 원인 규명, 선체 보존 등도 아직 남은 과제다. 벌써부터 미수습자 수색 방식을 두고 선체조사위원회와 해수부 간 이견으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해 8월 선체정리업체인 코리아쌀베지와 ‘객실 직립방식’(절단한 객실을 바로 세우는 방식)을 전제로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선체조사위원회는 이날 해수부에 객실 절단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김창준 선체조사위원장은 “객실 절단은 진상 규명의 증거인 선체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객실 절단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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