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착잡·분통… 반응 제각각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고, 대구 달성군에서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고향 중의 고향이다. 경북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구속에 대해 “안됐지만 하는 수 없다”는 반응이 만만찮게 많았다.
뇌물 등 13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법원이 31일 새벽 영장을 발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경북지역은 만감이 교차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민주주의 회복”이라며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박 전대통령 지지성향 시민들은 “대한민국 법치는 죽었다”며 반발하는 측과 “배신감을 느낀다”며 지지를 철회하는 쪽으로 갈렸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 때 재빠르게 입장을 표명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이번에는 공식 반응을 자제했다.
친박단체가 주최한 ‘탄핵반대’집회 등에 참석해 온 A씨는 “유구무언이다. 대한민국 법치는 죽었다.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영장발부 소식에 울었다. 날이 밝으니 하늘도 운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스럽다”며 반발했다. 김모(65ㆍ대구 달서구)씨는 “설마 했는데 구속까지 할 줄 몰랐다”며 “박 전 대통령이 10원 한푼 받은 게 없는데 구속하는 것은 특검과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 때문”이라며 흥분했다.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은 인정하지만, 탄핵이나 구속은 심했다는 반응도 많았다. 이모(57ㆍ대구 수성구)씨는 “잘 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탄핵하고 구속할만한 것은 아니었다”며 “좌파세력의 공작에 정치권은 물론 사법부도 놀아난 것으로, 친북 좌파세력이 나라를 결단낼 것”이라고 반발했다.
“박근혜 들어가니 세월호 (목포신항으로) 들어온다”며 환영하는 입장도 많았다. 박모(53ㆍ회사원)씨는 “사필귀정이다. 민주주의의 여명이 밝아온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동안 이 나라가 어떻게 됐나. 집값은 폭등하고 계층이동 사다리는 부러졌다. 시집장가 가서 아이 낳고 싶어도 취직도 못하는데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절망의 나라가 되지 않았나. 나라를 바로 세울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모(49ㆍ자영업)씨는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 변호사의 잘못으로 무조건 부인하다 구속됐다고 하는데, 변호사 탓이 아닐 거다. 그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정말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인 것 같다.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내가 한심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 전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때마다 찾았던 서문시장. 이 지역 민심도 예전 같지 않았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야채장사를 해왔다는 김모(80)씨. 그는 “서문시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를 했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런 사태에 휘말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지지했던 만큼 실망스럽고 마땅히 죗값을 치르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어물을 파는 박모(63)씨는 “아버지처럼 정치를 잘할 거란 생각에 뽑았었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며 “아버지 이름까지 먹칠을 한 것 같아 더 화가 난다”고 성토했다. 2지구에서 의류판매점을 하는 김모(72)씨는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오랫동안 뒤숭숭했던 나라가 조용해지기를 바랄 뿐이다”고 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고향인 포항은 대구ㆍ경북의 다른 지역과 사뭇 달랐다.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사필귀정이라는 기류가 더 강했다.
경북 포항지역에서 ‘태극기집회’를 이끌어 온 이두우(73ㆍ전 포항시의원)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행동’ 포항지부장은 “(박 전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법으로 처벌하더라도 구태여 구속을 안 해도 재판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국가를 위해서 다른 대통령보다 수고한 것도 많은데 구속까지 해서 온 전 세계적으로 한국을 우습게 만든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촛불집회를 주도해 온 황병열(53) 시민자치참여연대 준비위원장은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고 대통령이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일이다”며 “대통령을 잘못 뽑아 많은 국민들이 고통 받고 국가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돼 안타깝고 태극기와 촛불로 나눠지는 분열이 더 심화될 까 우려도 된다”고 말했다.
대구ㆍ경북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헌법재판소 탄핵결정 때와 달리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류규하 대구시의회 의장은 “당대표 시절부터 대표 시절부터 알고 지낸 만큼 안타깝고 착잡한 마음이다.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나라가 걱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단합하고 할 일을 다 하고 열심히 나아가야 한다. 나라가 바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ㆍ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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