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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재미없는 장난은 이제 그만

입력
2017.03.3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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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 그거 참 지루한 일이다. 긴 세월 동안 성장해서 얻는 거라곤 재미없는 삶과 매사 심각한 얼굴. 기껏해야 화면을 쳐다보거나 술 한 잔 들어가야 겨우 히죽히죽 웃는 정도이다. 오늘 같은 만우절도 여느 때와 같은 무표정이다. 학창시절 한 번쯤 했던 모두 뒤돌아 앉기 같은 유머는 어디로 갔는지 장난을 치거나 받아줄 여유가 없다.

어린 시절의 놀이정신이 사라진 건 안타깝지만 그 대신에 얻는 게 있으면 된다. 가령 성숙한 사고와 이해 그리고 이에 근거한 판단력 같은 것 말이다. 보통의 아이들이 보통의 어른들에게 기대하는 바로 그런 특질들이다. 놀이의 가상세계를 졸업하고 나서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세계는 뭐가 중요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정확히 아는 성숙한 지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 장난을 멈추게 된다. 더 이상 장난칠 때가 아니니까.

그런데 가만있어 보자. 정말로 그만 한 것인가. 어렵사리 넘겨 이제 다 끝난 일도 또다시 건드리고 있는 이 상황은 대체 뭐지. 장난치고는 너무 재미없는 장난이다. 그렇다. 나는 설악산 케이블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일으키며 가까스로 정리된 문제를 아직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는 실로 아연실색할 일이다. 이쯤 되면 자기 의견과 맞지 않으면 사회적, 국가적 절차를 거쳐 결정된 그 어떤 일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참 요즘엔 이런 게 유행이던가.

봄을 맞이하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다음과 같다. 지난 달 초 양양군은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한 문화재청의 불허 결정이 위법이며 부당하다며 취소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국립공원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최종 허가권을 갖고 있는 문화재청이 위원회를 통해 10명 전원일치로 부결시킨 일이 잘못됐다는 뜻이다. 이에 덩달아 한국경제 신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예 기획이슈로 케이블카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주장 일색의 기사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지난달에만 4 건이나 올라온 기사의 제목은 ‘1.8㎞ 케이블카 15년 걸리는 나라’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의 눈물’ ‘케이블카는 서럽다’ 등 가히 낯 뜨거운 표현들을 담고 있다. 양양군과 한국경제가 대체 무슨 관계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복잡한 전후사정에서 한 발 물러서서 다시 한 번 이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해보자. 설악산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자연의 보고이다. 국가 스스로가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등으로 지정한 곳, 국내에서 가능한 모든 보호 장치를 걸어놓은 곳이다. 한마디로 여기에도 지을 수 있으면 아무 데나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가장 자연적 영역이라 합의한 곳에 가장 인간중심적 장치를 집어넣겠다는 시도가 15년도 넘는 기간 동안 무려 세 번이나 공식 거절당한 상황이다.

삼수면 스트라이크 아웃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국내 과학자들은 물론 국제 보전생물학회가 케이블카 공사가 생태계 훼손을 우려해 케이블카 공사를 반대하는 정책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오색케이블카 경제보고서의 내용을 조작해서 제출한 혐의로 관련 공무원이 징역 1년형을 구형 받았다. 최순실 게이트의 ‘불똥’이 튀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애초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마디에 갑자기 힘을 얻어 최종 승인도 나기 전에 다 된 것처럼 개발업자들이 몸이 달아올랐던 사업일 뿐이다.

제대로 되는 것 거의 없는 이 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잘 한 결정이 하나 있다면 그건 설악산 케이블카 부결이다. 이제는 설악산을, 그리고 모든 산들을 가만히 놔두는 법을 받아들이고 배워야 할 때이다. 재미없는 장난은 이제 정말로, 정말로 그만해야 한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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