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임관 12년 차 젊은 판사에게 자신의 입장을 하루 종일 소명했다. 변함없이 부인과 변명이 법정 안을 가로질렀지만 14가지 범죄 혐의를 받는 권력의 부패와 마주한 법의 잣대는 엄중하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는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유로 참담하게도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까지 담겨 있다. 21일전까지 정점에 있던 권력의 이러한 급전직하는 근래 보기 어렵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끝나고 이 전직 대통령은 축 처진 어깨로 땅만 바라보며 서울중앙지법을 나섰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법원을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딱히 말이 없었다. 그는 결국 이튿날 새벽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기시감(旣視感)은 뚜렷하다. 1995년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구속된 노태우 전 대통령, 12ㆍ12사태와 5ㆍ18 내란 사건 혐의로 같은 해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다가 고향으로 도주 후 체포된 전두환 전 대통령, 2009년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 길지 않은 헌정사에서 몇 번이나 목도해야 했던 ‘법 앞에 선 전직 대통령’들이다.
반복되는 악순환에 국민의 절망과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폐해는 심각하다. 권력과 권위, 국가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 치유가 어려운 난치병을 접하는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사실을 애써 외면한 무분별한 옹호와 국론분열까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선 놀음에 빠진 정치권에서 확고한 변화 의지를 읽어내기도 어렵다. 뿌리내리는 법치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아야 할지, 또 다시 부패 역사의 전철을 밟은 권력자에 좌절해야 할지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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