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 주민들 홀로 걷기 불안
기자 접근에도 놀라 소스라쳐
수원시, 사건 후 안전에 49억
강력범죄 절반으로 줄었어도
이 동네만 인구 10%나 감소
어둠이 짙게 깔린 28일 밤 10시15분쯤 경기 수원시 한 골목길. 운동복 차림의 한모(58)씨가 고갯길 초입 대문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 인근으로 슬리퍼를 끌고 내려왔다. 한씨는 “직장에 다니는 아내가 회식이 끝났다고 해 마중을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10분 남짓 지나 버스에서 내린 아내와 만난 한씨는 “동네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은데다, 밤길도 어둑해 아내를 자주 데리러 나온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날 한씨처럼 아내와 딸, 여자친구 등을 바래다주거나 기다리는 남성들의 모습은 이 일대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여자친구 집까지 함께 갔다가 혼자 귀가하는 길”이라며 “홀로 걷기 무서운 골목길이 많아 웬만하면 이 근처에 와서 헤어진다”고 했다.
여성들의 눈빛에서는 경계심도 엿보였다. 술 취한 남성 등이 스쳐 지나갈 새면 뛰듯 종종걸음을 쳤다. 기자의 접근에도 놀란 모습을 보이던 회사원 정모(20대ㆍ여)씨는 “버스에서 내려 40,50m 거리의 집까지 가는데,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악몽의 짙은 그늘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지나던 가녀린 여성의 입을 우악스런 두 팔로 틀어막고 집으로 끌고가 처참히 살해한 이른바 ‘우웬춘(한국명 오원춘) 사건’이 벌어진 그곳의 얘기다. 다음달 1일이면 사건이 발생한 지 꼬박 다섯 해를 지나지만, 사람들 뇌리에 박힌 ‘불안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듯 했다.
그 사이 광교택지개발지구 등 도시 전체가 개발 붐을 타고 인구가 늘었으나 이 일대만이 유독 줄었다. 흉악범죄의 싸늘함이 사람의 온기마저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
30일 수원시에 따르면 수원시 인구는 2012년4월 113만5,089명에서 지난달 말 현재 123만905명으로 9만5,816명(8.4%) 증가했다. 하지만 우웬춘 사건이 터진 이곳은 같은 기간 1만7,687명에서 1만5,853명으로 되레 1,834명(-10.3%) 감소했다. 2014년 11월 동거녀를 토막 살인한 ‘박춘풍(한국명 박춘봉) 사건’이 발생한 마을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웬춘 사건 현장에서 2㎞ 남짓 떨어진 이 마을의 2년4개월여 전 인구는 1만2,268이었으나 1만1,790명으로 478명(-3.9%) 감소한 상황이다.
범죄 이후 공동체 회복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경기도는 우웬춘 사건의 아픔이 있는 곳을 ‘따복(따뜻하고 복된) 안전마을’로 지정해 19억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고 있고, 수원시 역시 30억 원 가까운 돈을 들여 ‘안전한 지역사회 만들기 모델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건을 계기로 방범용 폐쇄회로(CC)TV도 204대(51곳)나 추가 설치됐다. 기존 CCTV까지 합하면 각각 219대(59곳)에 이른다. 마을 전체(0.7㎢)에 감시 카메라가 그물망처럼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시는 여성 안심귀가로드매니저와 가스배관 특수형광물질 도포 등 특색사업도 벌이고 있다.
수원시는 그럼에도 이 지역이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하는 것을 ‘낙인효과’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민들이 일탈지역으로 여기는 편견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경찰청 범죄통계(2014ㆍ2015년)를 보면 한해 전국에서 발생하는 범죄 중 수원시에서 일어난 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2% 수준에 불과하다. 우웬춘 사건 지역의 강력범죄 건수도 2010년 304건에서 2015년 182건으로 크게 줄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광역자치단체와 맞먹는 인구 규모에도 사건사고가 많지 않은 안정된 도시”라며 “시민들 뇌리에 불안한 인식이 깊이 박혀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글ㆍ사진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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