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독자권익위]
/그림 1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 3월 정례 회의 모습.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위원장 강남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15일 3월 정례회의를 열어 지난 한 달간 한국일보 보도와 독자권익 침해 여부를 점검ㆍ평가하고 개선 방향을 조언했다. 이날 회의에는 강 위원장을 비롯해 배수정(CJ오쇼핑 홍보팀장) 윤양미(산처럼출판사 대표) 허윤(법무법인 예율 변호사)위원과 이계성(한국일보 논설실장) 간사, 이창선 편집국 뉴스2부문장 등이 참석했다.
강남준= 오늘은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 2기 마지막 회의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에 대해 한국일보가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중심으로 얘기해보자.
허윤= 탄핵심판 선고 다음날(3월11일)자 주요 신문 1면 편집을 비교해 봤다. 개인적으로 평가할 때 A신문 편집이 가장 돋보였다. 미니멀리즘의 극치 아닌가 싶었다. 그 다음으로 한국일보 편집이 좋았다. 사진에 부각된 여성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서울역사에서 TV로 선고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이라고 한다. 탄핵의 주체라는 의미에서 헌재 재판부 사진을 부각시킨 신문도 있었는데 진정한 주체는 국민이다. 한국일보가 ‘다시 희망을 보다’는 제목으로 선고 장면을 지켜보는 시민을 내세운 건 잘했다.
강남준= 나는 한국일보 1면이 가장 좋았다. 품격이 있어 보였다. 결정문 요지를 배경으로 깔아 눈길을 끈 신문도 있었지만 독자들이 그 내용을 읽었을까 싶다. 선고 당일인 10일 아침자에서 한국일보가 1면에 ‘승복할 준비 되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탄핵 인용과 기각 시 각각 승복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실었다. 타 신문들이 주로 탄핵 인용의 경우에만 집중했는데 기각 상황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의견을 묻고 보도한 것은 신선했다. 지금처럼 정치가 양극단으로 달릴 때 어느 한편에 서기 쉬운데 한국일보는 공평하게 양쪽을 실어 하이 스탠더드(high standard)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윤양미= 나는 좀 다르게 봤다. 일단 제목이나 사진이 쉽게 와 닿지 않는 모호함이 있었다. 작은 제목 ‘법치 혁명’이라는 말이 어렵고, 사진도 여러 사람의 얼굴이 기대에 찬 표정이긴 했으나 너무 클로즈업 되어 시각적으로 부담스러웠다. 1면 기사 내용 중 “촛불이나 태극기로 대별되는 특정 진영의 승리나 패배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의 진전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의 법치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이기도 하다”라는 부분이 있다. 헌재 판결이 굳이 어느 진영의 승리나 패배가 아니라고 언급할 필요가 있는가. 촛불이 동력이 돼 여기까지 왔는데 촛불을 일부러 외면한 느낌을 주는 1면이었다.
배수정= 사진과 제목이 미래 지향적이어서 상당히 좋았다. 그럼에도 이날자 1면 편집이 많이 회자되지 않아 아쉬웠다. 언론들이 촛불시위와 탄핵보도를 이어가면서 길을 잃은 측면이 있다. 3ㆍ1절 집회 시위를 보도한 3월2일자 1면이 대표적이다. 이날 B신문만 빼고 한국일보를 포함 대부분의 언론이 ‘두 동강’ ‘두 조각’ 등의 표현으로 양분된 분위기를 보도했다. 그 동안 거의 모든 언론이 국정농단 사태를 앞장서 보도했음에도 ‘애국’ 앞에서는 흔들리는구나 싶었다. 판에 짠 듯(클리세ㆍcliché)한 보도다. 국정농단과 탄핵 이슈만큼은 달리 접근하면 안되나. 한국일보가 전반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조금 더 새로운 시각으로 봐주기 바란다. 한국일보만의 브랜딩을 할 필요가 있다. 탄핵 국면에서 한국일보만의 차별화가 안됐다.
허윤= 태극기 집회 현장엔 탄핵은 찬성하지만 촛불로 가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제3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기 어렵다.
이창선= 3월 1일은 국경일이었다. 그날이 갖는 의미가 있었다. 그날 따라 태극기 집회 참가자가 많기도 했다. 기계적 균형을 취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반영한 보도였음을 감안해주셨으면 한다.
이계성= 국정농단 사건 초기에는 국민을 아연케 하는 사실들이 연일 보도됐고 국민들 사이에 “이게 나라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다 정권이 좌파로 넘어간다’는 우려가 보수 진영 내에서 퍼지기 시작하면서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늘었다. 광장 일각에 표출된 이런 분위기가 지면에 반영된 것 같다.
허윤= 탄핵 선고 후 ‘굿바이 낡은 리더십’ 기획 보도가 이어졌다. 하늘 아래 새로운 기사는 없다는 말처럼 청와대 구조 문제 등은 그간 지적되어 오던 것들이긴 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새로운 변화를 겪어야 하는 시점에서 지속적인 지적은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朴 삼성동 사저 집기, 최순실이 임의로 처분했다’(3월 14일자), ‘안종범 수첩 39권 특검 손에 넘어간 사연’(3월 9일자) 등의 단독보도도 눈길을 끌었다.
윤양미= 3월 9일자 [Vies &]에 ‘촛불의 기적들’을 다루면서 사진과 그래픽, 숫자 등으로 정리했다. 지면이 화려해 보기 좋았고, 행진 거리, 참가 총인원, 최대 기온 차, 수거한 광화문 쓰레기량, 헌법도서 증가량 등 구미가 당기는 요소를 뽑아 소개한 기사도 좋았다.
배수정= 2월 15일자 [편집국에서] 칼럼 ‘정규재라는 언론인’(김희원 기획취재부장)은 용감했다. 관련 사안에 대해 언론에서 말들이 많았지만 타 언론 주필의 인터뷰를 대놓고 비판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론을 펴는 언론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강남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허윤= 중국의 과도한 보복은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도 있다. 지난해 초부터 현장에서는 중국 측의 보복 경고에 대해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 관련 부처와 청와대에 보고서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1년 이상 현장 보고를 무시하거나 묵살했다. 이 부분에 대해 한국일보를 포함해 어떤 언론도 다루지 않았다. 언론의 책임 방기다. 한국일보 보도는 대략적으로 일단 사드 배치는 대선 뒤로 미뤄 차기 정부가 결정하도록 하자는 뉘앙스다. 반면에 사드 배치를 이번에 못 박아서 더 이상 강대국 외교에 끌려가지 말자는 강경한 의견도 있다. 한국일보가 정부의 미흡한 대처에 대해서는 끊임 없이 비판하고 지적해야 한다.
배수정= 올 휴가는 시안 등 중국 내륙지역에 갈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중국 웨이보를 보면 한국인을 해코지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합리적 이성적으로 이야기 한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중국 현지의 분위기와 느낌을 다뤄주면 좋겠다. 중국으로 여행 가도 되는지, 중국 교민은 안전한지 등 구체적 차원의 접근도 필요하다.
윤양미= 중국의 사드 보복이 도를 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 양상도 본격화는 것 같다. 이런 때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특별기고 ‘국가 안보는 동맹과 친구 사이에서 강화된다’(3월 9일자)가 읽을 만했다. 현 정부는 ‘사드 기정사실화’가 아니라 협상과 명분 축적에 필요한 시간을 다음 정부에 넘겨주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사드 문제를 보는 데 중심을 잡아줬다고 생각한다.
이창선= 최근 한국일보 지면이 일부 개편됐다. 토요일자에는 읽을 거리가 많은 신문을 지향하는 의미에서 ‘끌림’을, 수요일자에는 심신이 지쳐있을 때 오아시스처럼 숨돌릴 수 있는 섹션 ‘겨를’을 만들었다. 지면 개편에 대해서도 평가해주기 바란다.
배수정= 3월 4일자 커버스토리 #끌림 ‘포스트 제주, 강원도’ 기사가 참 좋았다. 사람들 사이에 반향이 컸다. 삶에 와 닿은 기획이었다. 기획이 탄탄했고 힐링과 부작용까지 다뤄 컨텐츠가 풍부했다. 페이스북에 공유하니 ‘좋아요’가 많이 달렸다.
윤양미= 토요일자를 매거진 형식으로 구성한 것은 독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지면 변화인 것 같아 반갑다. 연재물 김덕영 교수의 ‘루터와 종교개혁 500년’ 이나 배철현 교수의 ‘카타르시스, 배철현의 비극 읽기’ 등 교양으로서 읽을거리가 늘었다. ‘2017년 갈등 리포트’ 첫 회 ‘3670일 거리 인생…오늘도 복직의 주문을 걸어본다’는 10년 동안이나 거리에서 공연하고 있는 콜텍의 해고자 기사를 다뤘다. 차별화된 기획이다. 앞으로도 기대된다.
허윤= 3월 2일자 1면 ‘경찰서 위에 아파트… ‘주경복합’ 짓는다’ 기사가 눈에 띄었다. 경찰서 위에 고급 주경복합 아파트를 짓기보다는 저소득층을 위한, 그리고 여성 및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이끌어내면 어떨지. 한번 던지고 끝나는 기사보다 이걸 어떻게 이어갈까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2월27일자 ‘월세 못 드려 죄송, 목맨 60대’는 안타까운 기사다. 발로 뛰어 발굴한 기사로 보이는데 국가의 취약계층,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체계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기획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
배수정= 컨텐츠만큼이나 포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한국일보 지면에는 색이 많은 것 같다. 공 들여 만든다. 그런데 색, 전반적인 색감, 컬러와 흑백 사진의 선정, 삽화를 어떤 크기로 할 것이냐 등을 조금 더 고민해야 한다. 좋은 기획기사가 디자인 부분이 딸려 주목을 못 받을 때가 있다.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고급진’ 신문이라는 느낌을 줘야 한다. 이런 부분은 컬러가 영향을 준다. 컬러가 통일성이 없고 너무 많다. 쓱 보면 사진도 많고 사진 위치도 그렇다. 전반적으로 한번 잡아주며 어떨까 말씀 드리고 싶었다.
강남준= 개인적으로 이런 성격의 위원회는 세 번째였다. 지난 1년 동안 내실 있는 독자권익위원회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준 위원들께 감사를 드린다. 위원장을 마치면서 ‘신문 산업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연령별 신문구독률을 보면 노인층이 많이 보는 걸로 나온다. 그러면 요즘 신문을 안 보는 젊은이들이 나이가 들면 신문을 보게 될까.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문산업의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신문들은 대체로 인터넷에 승부를 걸고 있는데 그보다는 하이퀄리티 컨텐츠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문제는 좋은 컨텐츠를 온갖 소셜 미디어에 올려도 잘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유통의 문제다. ‘콘텐츠 쇼크(Contents Shock)’시대는 컨텐츠으로만 승부할 수 없다. 컨텐츠만 잘 만들면 된다는 것은 환상이고, 유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리= 이창선 뉴스2부문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