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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전’은 오로지 감독 탓인가

입력
2017.03.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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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 푸스발 칸 만 니흐트 위버레벤.’ (축구 없인 살아가기 어렵다)

독일 사람들이 수시로 쓰는 말이다. 축구는 그들 삶의 일부다. ‘축구 없이 살아가는 법’이라는 책이 발간돼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당연히 축구 감독, 선수를 향한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10년을 뛰었던 ‘차붐’과 축구와 언론의 관계를 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한국 대표팀 감독을 할 때 국내 언론에 곤욕을 치렀던 그가 “극성맞은 독일 기자들에 비하면 한국 기자들은 점잖은 편이다”고 말해 조금 놀랐던 기억이 난다. 경기 결과에 감독이 모든 책임을 지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독일 기자들은 선수에도 관대함이 없다고 한다. 100%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하는 날에는 엄청난 비판 기사가 쏟아진다.

28일 시리아에 진땀 승을 거둔 뒤 대표팀 주장 기성용이 “선수들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고 일갈한 걸 보며 차붐과 대화가 떠올랐다.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28일 시리아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에서 기회를 놓친 뒤 그라운드 위에 누워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28일 시리아와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7차전에서 기회를 놓친 뒤 그라운드 위에 누워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 분석업체 팀트웰브에 따르면 한국은 시리아를 상대로 역습플레이와 핵심 공간플레이, 뒷공간 침투 플레이를 각각 9개, 12개, 11개 시도했다. 상대 문전 위협지역에서 슛까지 연결한 횟수는 단 1개에 불과했다. 성공률이 8~11%다. 데이터 전문가는 “시도 횟수 자체도 적고 성공률도 낮다. 좋은 축구를 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에이스’ 손흥민은 시리아전에서 공이 ‘정지’된 상황일 때만 눈에 띄었다. 세트피스 킥만 날카로웠지 움직임은 기대 이하였다는 뜻이다. 손흥민은 볼 손실이 12개로 가장 많았는데 자신의 최종예선 7경기 평균치(5.3개)의 두 배 이상이었다. 물론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하지 못한 감독의 역량 부족 탓도 크다. 하지만 졸전을 모든 원인을 사령탑에만 돌리는 처사도 이해하기 힘들다.

기성용은 이런 말도 했다.

“대표팀 생활을 오래 하면서 감독님들이 2년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대표팀이 경기력 문제를 보이면 감독만 책임을 지더라. 이건 아닌 것 같다.”

대한축구협회가 전임 감독제를 도입한 1992년 이후 한국이 월드컵 최종예선을 수월하게 통과한 건 1998년 프랑스월드컵 딱 한 번이다. 나머지는 모두 가시밭길이었다는 점도 우리는 잊고 있는 것 같다.

시리아전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가대표 출신 한 축구인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경기력이 안 좋으면 도마에 오르는 게 감독의 숙명이라지만 특정 의도(반드시 경질해야 한다는)를 갖고 이렇게까지 흔들어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수많은 감독을 자르고 바꿔서 한국 축구에 남은 게 뭐가 있습니까?”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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