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걸 왜 한다고 그랬지?” 배우 이민호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농담 반 진담 반 넋두리를 하며 껄걸 웃었다. 금단의 땅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호기심에 호기롭게 덤볐다가 고생깨나 했다.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와 눈싸움도 벌이고, 서해 무인도에선 갈매기 무리의 새똥 세례도 받았다. 개미떼만 봐도 질겁하던 이민호는 몇 차례 DMZ를 찾은 뒤 달라졌다. 모양만 보고도 고라니 배설물을 구분했고 맨손으로 뱀도 덥석 잡았다. MBC스페셜 ‘DMZ, 더 와일드’ 제작진은 이런 이민호에게 ‘자연다큐계의 영재’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민호는 ‘DMZ, 더 와일드’에 ‘프리젠터’로 참여한다. 단순히 내레이션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출연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진행자다. 심지어 ‘노 개런티’여서 이민호를 섭외해 놓고도 “제작비 절반을 출연료로 쓰게 될까” 근심하던 제작진의 부담을 덜어줬다. 촬영이 진행된 1년 5개월간 이민호는 계절마다 틈틈이 DMZ를 찾았다. 짧게는 2박3일, 길게는 7박8일간 야생에 파묻혔다. 이민호는 “(총 제작기간) 700일 내내 DMZ에서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4개월간의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다시 다큐멘터리 제작에 합류했을 땐 “복귀한 기분이었다”고도 했다.
29일 서울 상암동 MBC방송센터에서 열린 ‘DMZ, 더 와일드’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민호는 “평소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아 BBC와 디스커버리 같은 해외 다큐멘터리를 즐겨 봤다”며 “시청자들에게 다큐멘터리가 쉽고 편안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에 참여하게 됐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이민호는 처음 DMZ에 발을 디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60년 넘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궁금했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몰려오더라”고 했다.
이민호는 제작진에 섞여서 때때로 운전도 하고 촬영도 했다. 제작진이 “이민호와 차량에 동승하는 걸 피해야겠다” 생각할 만큼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도 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과 돌발 변수가 많은 야생 환경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민호는 특히 “짜여 있는 스케줄에 따라 살아온 터라 기다림의 시간들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무언가를 이렇게 오래 기다려본 건 처음이었다”며 “땡볕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던 멧돼지가 나타난 순간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영상으로 접한 멧돼지만 생각했다가 혼쭐났다. 막상 눈을 마주치니 야생 동물 특유의 ‘기운’에 몸이 얼어붙더라는 것이다. 이민호는 “뉴스를 통해 험한 사건들도 보고 작품에서도 잔인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지만 눈앞에서 목격한 멧돼지의 동족 포식 장면은 특히 충격적이었다”며 “다큐멘터리가 리얼 그 자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DMZ, 더 와일드’는 화제작 ‘아마존의 눈물’과 ‘남극의 눈물’ 제작진이 선보이는 신작 다큐멘터리다. 두 작품의 연출자 김진만 CP가 기획을 맡았고, ‘아마존의 눈물’ 조연출 출신 김정민 PD와 ‘남극의 눈물’ 조연출 출신 조성현 PD가 공동 연출한다. 극한의 환경을 두루 경험한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진이다.
김 PD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DMZ의 가치를 우리만 모르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생태학적 가치가 있는 곳이 가까운 곳에 있고 무척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조 PD는 “DMZ를 동물의 낙원으로 알고들 있지만 그곳에선 상상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그 안에도 계급의 문제가 있고 상위 포식자가 누구냐에 따라 생태계도 달라진다. 단절된 사회의 기묘한 모습을 많이 봤다. 인간이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MZ, 더 와일드’는 내달 3일 밤 11시 10분 제작기를 담은 프롤로그 편을 내보낸 뒤 6월 5일부터 3주간 3부작 본편을 차례로 방영한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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