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리 슈틸리케 감독/사진=KFA
[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호는 국민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겠다고 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겼지만 아시아 맹주의 자존심은 거듭 땅에 떨어졌고 이를 바라보는 민심은 악화 일로에 놓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시리아와 홈 7차전에서 전반 4분 터진 홍정호(28ㆍ장쑤 쑤닝)의 선제골을 끝까지 잘 지켜 1-0으로 이겼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슈틸리케호는 시리아의 거센 반격에 진땀을 빼야 했다. 경기 후반에는 추가골보다 동점골을 걱정할 만큼 경기력이 낙제점에 가까웠다. 골키퍼 권순태(33ㆍ가시마 엔틀러스)가 얼굴로 막은 것과 추가 시간 골대를 강타한 슛은 실점이나 다름없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왕성해지고 전술적으로도 더 다양해지는 시리아 축구는 사실 슈틸리케호에 바라던 그림이었다.
당초 약체로 분류되던 시리아를 맞아 안방에서조차 힘을 쓰지 못하는 한국 축구는 앞으로 죽음의 원정 2경기(카타르-우즈베키스탄)를 비롯해 A조 최강 이란과 홈 경기를 남겨뒀다. 최악의 경우 침몰 가능성은 여전하다.
슈틸리케 감독 체제 이후 한국 축구는 민심과 자존심이라는 결정적인 두 가지를 잃었다. 슈틸리케호는 더 이상 모두가 두려워하던 아시아 축구의 맹주가 아니다. 만만한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상태다.
공한증에 시달리던 중국 축구는 지난 경기에서 한국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두려움은커녕 탄탄한 전술과 한국의 기를 꺾는 투지로 7년 만에 승리를 만들어냈다. 시리아 역시 원정 경기임에도 물러서지 않고 맞불작전을 벌였다. 예상을 깨고 공격적으로 나온 시리아의 전술에 대해 경기 후 알 하임 시리아 감독은 "그때그때 상황과 상대에 따라 플레이를 해왔다"며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그런 전략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한국 축구라면 제대로 붙어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잃은 건 자존심만이 아니다. 악화된 민심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정황들이 이대로는 힘들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여론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댓글들은 '더 실망할 여지도 없다', '이제 그만 산소 호흡기를 떼자'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돌아선 민심은 경기장에서도 확인됐다. 공식 입장 관중은 3만352명으로 집계됐지만 열기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느낌이었다. 국가대표 A매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경기 시작 30분 전인데도 한산한 기운마저 풍겼다. 흥에 겨워 쉬지 않고 정열을 뿜어내던 붉은 악마의 모습은 경기 중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기자들의 날 선 질문들이 맹공을 퍼붓듯 쏟아졌다. '행운이 따른 승리', '시리아가 주도한 경기', '두루뭉술한 답변' 등의 발언들이 슈틸리케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기고도 해명에 급급한 감독의 모습에 한국 축구의 씁쓸한 현주소가 투영됐다. 결과를 떠나 슈틸리케호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첩첩산중인데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이 나올지 의문스럽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수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대 이하의 경기력에 대해 주장 기성용(28ㆍ스완지시티)은 "불만스럽다. 감독님이 많은 준비를 했지만 선수들의 전술 수행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한다면 어떤 감독이 와도 문제"고 일침을 가했다. 손흥민(25ㆍ토트넘)도 "경기장에 안에서 뛰는 건 결국 선수들이다. 책임감 없이 플레이해선 안 된다"고 쓴 소리에 동참했다. 이천수(36) JTBC 해설위원은 "승점 3을 딴 것은 굉장히 큰 행운"이라며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은 한층 올라갔으나 선제골 이후에 보여준 경기력은 하나도 없다. 남은 원정 두 경기에 대한 아주 많은 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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