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잠적한 아들 내외의 빚에
학대당한 손주들까지 떠안아
얹혀 살던 동생과 다투다 봉변
지난 설 연휴 직전 70대 형제 간에 발생한 ‘서울 마천동 장롱 살인’ 사건은 가족 붕괴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부모자식 간 관계 단절, 이혼, 자녀 학대와 방치, 고령화에 따른 경제적 궁핍, 사건 이후 미성년 가족 지원 미비 등 안타까운 사연이 가득하다. 경찰은 형(79)을 살해하고 시신을 장롱에 숨긴 혐의로 김모(69)씨를 10일 재판에 넘겼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
28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손자(20·군 복무 중) 손녀(18)와 함께 살고 있었다. 2014년 아들 내외가 빚을 떠 넘기고 연락을 끊으면서 두 손주를 떠안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김씨는 한 달에 49만원이 조금 넘는 지원금을 받고 지내던 터라, 월세와 식비를 충당하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점에서 마늘을 팔고, 가지고 있던 소형 트럭도 팔았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김씨 주변인들은 “아들 내외가 손주들을 방임하면서 학대도 해온 사실도 알고 있어서, 손주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설상가상 김씨에게 동생이 이혼하면서 오갈 곳이 없다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얹혀 살겠다고 찾아왔다. 동생은 3개월 가까이 벌이가 없었다. 형은 올 1월 5일 동생에게 “생활비라도 벌어와야 하지 않겠냐”고 따져 물었다. 격한 말싸움에 동생은 화를 참지 못하고 형을 목 졸라 숨지게 했다. 동생은 경찰에서 “그날따라 형의 구박이 심해 화가 나서 그랬다”고 했다.
동생의 범행은 설 연휴 전날인 1월 26일 군복무 중인 손자가 휴가를 나와 장롱 속 시신을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함께 지내던 손녀는 그 기간 지인 집에 머물고 있어 사건을 알지 못했다. "제주도 친척 장례식에 가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달아난 동생은 2월 16일 경찰에 붙잡혔다.
실질적인 가장을 잃은 손주들은 막막하다. 당장 유족구조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유족구조금은 직계존속에게 주는데, 1순위인 아버지가 연락이 두절돼 손자에게 순위가 넘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에 아버지와 연락이 안 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지만, 군인 신분이라 쉽지 않다. 급한 대로 경찰은 손녀에게 기초수급대상 자격을 넘겨주고 각종 심리상담 및 취업 프로그램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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