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ㆍ장난감 등 골라 정기적 서비스
여가생활 ‘정서 배달’로 쑥쑥 진화
디저트서 유명 맛집 메뉴까지 척척
배달이 디지털을 만나 끝없는 진화를 하고 있다. 배달이라는 단어에 치킨과 짜장면, 피자를 떠올리는 건 지난 세기의 이야기다. 2~4인용 음식 재료에서 반찬,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같은 디저트, 굽는 즉시 먹어야 제 맛인 삼겹살, 심지어 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유명 맛집의 인기 메뉴까지 음식 배달은 이제 불가능한 품목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다양해졌다. 음식뿐만 아니다. 디지털 시대는 상품은 물론, 취향과 정보까지 배달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위치 기반 소프트웨어(앱)는 배달 앱 같은 온라인ㆍ오프라인 연계 사업(O2O, online to offline)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제 스마트폰 앱만 열면 자기가 있는 곳 근처의 배달 가능한 가게 목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최근에 주목받는 건 취향 배달 서비스다. 꽃이나 책, 다양한 취미거리를 정기적으로 배송 받는 것인데 일반적인 택배와 다른 점은 구매자가 특정 상품을 정해서 배송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배송업체가 직접 큐레이션을 해서 보내준다.
‘취미’를 정기적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는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하비박스는 건담 프라모델, 레고, 가구 리폼, 드론, 마술 등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직접 마련한 취미거리를 배달해준다. 자신의 성향에 맞게 특정 분야를 정할 수도 있고 무작위로 배송받을 수도 있다. 도현아 하비박스 대표는 “단순히 제품만 배송해주는 것이 아니라 큐레이터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지 알려주고 SNS를 통해 큐레이터나 다른 회원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해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플라이북은 정기구독자의 취향에 맞게 매달 책을 배달해준다. 고객의 취향이나 관심사 등은 물론이고 나이, 성별, 직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을 선정한 뒤 손편지나 차 같은 소품과 함께 보내준다. 김준현 플라이북 대표는 “우리나라 독서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이며 7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하게 됐다”며 “책을 읽고 싶어도 어떤 책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최근의 기분이나 관심사에 맞는 책을 추천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플라워 서브스크립션’은 신문 구독처럼 정기적으로 꽃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꾸까, 더꽃장수, 로사드블랑, 떼아블라썸, 에이치블랑, 키마, 원모먼트, 모이플라워 등이 대표적인데 업체마다 다르지만 격주로 1회 2만원 안팎의 꽃다발을 보내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20~30대 여성들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꽃을 주로 활용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말기암 환자, 취업 준비생들에겐 힘을 주는 위로의 선물이다.
직원들의 여가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취미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기업도 등장했다. 신한은행은 이달부터 ‘취미를 배달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다크 초콜릿 만들기, 미니정원 테라리움 만들기, 석고 타블렛 방향제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담긴 ‘취미 박스’를 직원의 집으로 배달해준다. 첫 배달 정원이 300명이었는데 500여명이 신청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기획”이라며 “지역적 한계 때문에 사내 취미 모임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지방 근무 직원들의 반응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배달 서비스를 하지 않던 유명 맛집의 음식도 장벽이 허물어졌다. 음식배달 전문업체 푸드플라이는 인도 커리, 그리스 수블라키, 베트남 쌀국수, 랍스터, 케밥, 주꾸미 볶음, 초밥, 타코야키 등 배달과는 거리가 멀었던 메뉴 음식을 가져다 준다. 이태원의 태국식당 부아, 서울시청 인근의 만족오향족발 등 미쉐린가이드가 가성비 좋은 맛집(빕 구르망)으로 선정한 식당의 음식도 줄 설 필요 없이 약간의 배달 비용만 지불하면 집에서 배달해 먹을 수 있다.
주문자와 식당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공유 주방’까지 생겨났다. ‘배달의민족’은 배달음식 주문건수가 많은 서울 강남 지역 이용자들이 이태원 유명 레스토랑의 음식을 배달해 먹을 수 있도록 강남에 공유 주방 ‘배민키친’을 만들어 ‘라이너스 바비큐’ ‘레프트 코스트 아티잔 버거’ ‘바토스’ ‘챔피 키친’ ‘프레시투고’ 등 5개 식당을 입점시켰다. 이 식당들은 강남에 분점을 내지 않고도 공유 주방에 셰프를 파견해 인근 지역에 더욱 빨리 음식을 배달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추세 때문에 국내 배달 앱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배달의민족은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따르면 2015년 1월 약 490만건이었던 주문이 올해 1월엔 2배가 넘는 1,100만건으로 늘었다. 주문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배달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졌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케이크, 아이스크림, 커피 등 디저트 음식 비중이 급격히 늘고 있다.
첨단기술이 접목되면서 주문이나 배달 방식도 바뀌고 있다. 요기요는 지난해 11월 인천 송도에서 한화테크윈과 드론을 이용한 음식 배달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시도해 성공했다. 음성통화에서 스마트폰 앱이나 실시간 문자 서비스로 바뀌고 있는 주문 방식도 조만간 인공지능이 대신해줄지 모른다. 성호경 배달의민족 팀장은 “인공지능으로 주문자의 정보나 취향, 현재 상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메뉴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영 상명대 교수(소비주거학)는 “소비자의 수요가 실시간으로 반영돼 공급받는 ‘온디맨드 O2O 서비스’ 시장은 1인 가구 증가와 맞물려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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