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영월 100리 바위절벽에 동강할미꽃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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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영월 100리 바위절벽에 동강할미꽃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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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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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의 봄은 바위틈에 먼저 온다. 해발 700~800m 골짜기엔 아직 잔설이 남아있는데, 강가 바위절벽에는 동강할미꽃이 활짝 피었다. 흰색부터 분홍, 자주, 보라, 연한 청색까지 색깔도 다양하다. 동강 앞에는 으레 영월이 수식어처럼 붙지만 정선 가수리에서 영월읍내까지 이어지는 100리 물길 중 65%는 정선 땅을 흐른다.

정선읍 귤암리 초입 강변 바위절벽에 동강할미꽃이 활짝 피었다. 정선=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뼝대 위 사이 좋게 동강할미꽃과 동강고랭이

평창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정선읍내 조금 못 미쳐 광하교를 지나면 솔치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귤암리ㆍ가수리로 방향을 틀면 도로는 동강에 바짝 붙어 구불구불 이어진다. 초입부터 왼편 바위절벽에 몸을 붙이고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동강할미꽃의 고운 자태를 찍으러 몰려 든 이들이다.

동강할미꽃을 처음 발견한 이도 야생화사진가 김정명씨다. 1997년 이 부근에서 최초로 동강할미꽃을 촬영했고, 이듬해 제작한 야생화달력의 4월 셋째 페이지에 이 사진을 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할미꽃이었다. 일본 식물학자가 명명한 ‘풀사틸라 코리아나 나카이(Pulsatilla Koreana Nakai)’라는 학명도 그대로 실었다. 다만 일반 할미꽃이 허리가 꼬부라진 데 반해 “이 할미꽃은 하늘을 향해 노란 꽃술을 보이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이 때문에 식물학자들에게 연구 대상인 꽃이다”라며 여지를 남겼다. 이를 본 식물학자 고 이영노 박사와 이택주 한택식물원장이 2년간의 연구를 거쳐 새로운 할미꽃임을 밝혀냈고 동강의 이름이 들어간 학명(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 T.C.Lee)으로 등재하게 된다. 동강할미꽃이 정식 명칭을 갖게 된 내력이다.

묵은 줄기와 잎이 늘어져 더욱 멋스럽다.
동강할미꽃은 일반 할미꽃에 비해 꼿꼿한 것이 특징. 보랏빛도 훨씬 고급스럽다.
귤암리 줄 배 체험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강 맞은편의 동강할미꽃을 볼 수 있다.
같은 곳의 동강할미꽃도 일부는 색깔이 분홍에 가깝다.

동강할미꽃이 뿌리를 내린 곳은 깎아지른 석회암 바위 틈이다. 물도 제대로 흡수하기 힘든 좁은 틈과 옴폭 들어간 부위에 자리잡고, 부드러운 솜털 입은 고운 꽃을 피웠으니 볼수록 귀하고 예쁘다. 현장 안내문에는 ‘뼝대’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문맥상 바위절벽이라는 뜻의 이 지역 사투리다. 수 십 미터 높이의 수직 절벽이 물길 내내 이어져 있느니 ‘벼랑’ 혹은 ‘절벽’이라는 표준어로는 그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 부족하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모두들 동강할미꽃만 찾으려고 눈을 부릅뜨지만, 사실 뼝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의 긴 수염처럼 늘어진 사초(莎草)들이다. 맨눈으로는 구분이 힘들 정도로 작은 꽃잎이 황새의 날개 짓 같다고 하여 처음에는 정선황새풀로 불렀다. 나중에 이 풀은 일반 사초 식물과 달리 암수 딴 몸이어서 동강고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위절벽에 사이 좋게 동거하는 동강할미꽃과 동강고랭이를 가리켜 어떤 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돌 침대에 나란히 누워 동강을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표현했단다. 이 무렵 또 눈길을 끄는 것은 돌단풍이다. 바위 틈에서 발갛게 밀어 올린 꽃대의 자태도 그렇고, 도깨비방망이 마냥 울퉁불퉁한 봉오리에서 하나 둘씩 피어나는 꽃도 신비롭고 앙증맞다.

동강할미꽃과 같은 시기에 꽃을 피우는 동강고랭이.
돌단풍의 자태도 앙증맞다.
예쁜 사진 찍는다고 묵은 잎을 뜯어낸 동강할미꽃은 조화를 꽂아놓은 것처럼 생기를 잃었다.
묵은 잎이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생태사진은 자연스런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동강할미꽃은 2008년 철쭉을 밀어내고 정선의 군화(郡花) 자리를 꿰찼지만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을 만큼 흔한 꽃이었단다. 열매는 길고 흰 수염을 달고 있어 백두옹(白頭翁)으로도 불리는데, 아이들이 이 열매를 비비고 뭉쳐서 공놀이를 할 만큼 많았다는 게 서덕웅 동강할미꽃마을 보존연구회장의 전언이다. 현재 자연상태의 동강할미꽃은 약 800개체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보존회에서 씨앗을 받아 키운 동강할미꽃은 축제기간을 전후해 동강생태체험장 주변 화단에 심고 있다. 바위절벽에도 심어봤지만 생존율은 높지 않았다고 한다.

동강할미꽃축제(3월 31일~4월 2일)를 열고 있는 귤암리는 첩첩 산중 정선에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고장이다. 이 구역 강물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귤암리는 감 꽃이 만발했다는 귤화리와 인근 의암리가 합쳐진 지명이다. 의암리는 바위에 옷을 해 입혀 부자가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마을이다. 그만큼 자연을 경외하고 섬겼다는 증거로 여겨 지금도 축제를 시작하기 전 온 마을 주민들이 이 ‘옷바위’에 제를 올린다.

귤암리 마을에서 운영하는 줄 배 체험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강 맞은편으로 이동해 생태관찰을 할 수 있다. 꽃도 별로 없는데 무슨 축제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서덕웅 회장은 “사진이 아니라 자연이 준 귀한 선물을 아끼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일러 준단다. 그래서 축제도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주가 아니라, 보물찾기 하듯 찬찬히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안고 가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동강할미꽃은 매년 4월 5일을 전후한 열흘 정도에 가장 많이 피고, 시간상 햇살이 따스한 오후 2~4시 사이 꽃잎을 활짝 벌린다.

‘뼝대’따라 물길따라…동강의 비경 속으로

동강할미꽃을 보러 귤암리까지 갔으면 되돌아 나오기 보다 그 길로 쭉 내려가 보라. 천천히 차를 몰면 동강의 비경으로 들어간다. 이곳은 정감록의 십승지 중 7번째로 언급된 곳이다. 십승지(十勝地)는 재난이 일어날 때 피난을 가면 안전하다는 10개 지역이다. 협곡을 이루는 산세만 보면 지금도 선뜻 발을 들이기 주저할 만큼 골짜기가 깊다. 마을과 펜션도 모여있지 않고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가수리의 동강과 조양강 경계표시.
가수리 인근 ‘붉은 뼝대’. 뼝대는 바위절벽 혹은 벼랑을 뜻하는 사투리다.
가수리 오송정의 멋들어진 소나무.
강물 따라 내려가면서 흔히 볼 수 있는 동강비오리.

편의상 동강으로 부르지만 엄밀히 따지면 귤암리까지는 조양강이다. 정선 아우라지에서 이어진 물길은 높은 산을 감고 뱀처럼 휘어 도는 사행천(蛇行川)이다. 그 만큼 유속도 느린데, 아침햇살 비치는 잔잔한 수면에 바람이 불면 물 비늘이 반짝인다는 강이다. 조양강은 가수리에서 지장천과 합류해 비로소 동강이 되고, 영월읍내에서 서강과 합쳐져 마침내 남한강이 된다.

가수리는 따로 가수리 8경을 정할 만큼 풍광이 빼어나다. 정선초등학교 가수분교 운동장 끝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강 양편으로 흩어진 마을의 중심을 잡고 있다. 매년 3월 3일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를 지내는 수령 570년 된 나무다. 바로 옆 언덕에는 한눈에도 잘 생긴 소나무가 강을 굽어보고 있다. 진시황이 태산에서 폭우를 피했다는 오송정(五松亭)의 이름을 그대로 땄다. 실제 5그루가 있었는데 지금은 2그루만 남았다. 붉은 석회암 절벽이 드러난 ‘붉은 뼝대’, 효자강아지 전설을 담은 ‘개바위’ 등도 가수리를 풍성하게 하는 이야깃거리다.

동강을 비롯한 정선 영월 평창지역은 지난해 ‘강원고생대 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지만 곳곳에 지질공원 표지판을 설치해 길손의 이해를 돕는다. 이를테면 작은 동굴은 왜 줄을 따라 나타나는지, 절개지 암석에 왜 곡선과 직선 줄이 나 있는지, 절벽 맞은편에는 왜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는지 등 물길 따라 내려가다가 만나는 비경마다 지질학적 특성을 설명해 놓은 식이다.

나리소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강의 물빛. 비현실적으로 초록이 짙다.
점재마을 인근 물길과 나란한 도로.

왕복 2차선이던 도로는 가수리를 지나면 중앙선이 없는 시멘트포장길이다. 달릴 수도 없거니와 끝없이 이어지는 비경에 저절로 느려진다. 산처럼 묵묵하게 강물처럼 여유롭게 길은 10km 아래 점재마을까지 이어진다. 점재마을 하류 강변도 동강할미꽃이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점재마을을 지나면 물길은 대여섯 차례 크게 휘어 돌며 사행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거의 360도를 돌아가는 첫 번째 굽이에는 깊은 소(沼)가 만들어졌다. 도로에서 약 10분 정도 오르면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나리소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아찔할 정도로 높고 깊은데, 초록이 짙은 물빛을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 동강 물은 멀리서 보면 한없이 맑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강바닥 돌에는 물때가 껴 있고 유속이 느린 구간에는 잔 거품도 떠다닌다. 상류 평창의 도암댐에 쌓여있는 오염된 퇴적물이 끝없이 내려오기 때문이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댐을 해체하지 않는 한 자연정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리소전망대를 지나면 도로는 더 이상 물길을 따라가지 못하고 산을 넘어 신동읍으로 이어진다. 신동에서 31번 국도로 영월읍내에 닿을 즈음에야 다시 동강과 만난다.

정선=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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