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세월 저는 아버지의 그 마지막 하루를 고스란히 마음에 움켜쥐고 살았습니다. 저를 버리고 가 버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제가 버려두었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중략) 마음도 병이 들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환각과 환청이 찾아왔습니다. 칼부림 소리, 사방에 튀는 피, 기괴하게 뒤틀린 시체가 정신 없이 펼쳐졌고 그 위로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아버지가 자살한 딸 A씨)
“언제나 가슴속 태양처럼 빛이 되고 희망이 되어 주던 아들이 죽고 나자 1,000만 인구가 산다는 서울도 텅 빈 유령 도시처럼 느껴졌고,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송장 같은 삶이었습니다.” (자살한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 B씨)
자살이란 비극은 숨진 자의 퇴장으로 끝나지 않고 남겨진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28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발간한 자살 사별자 수기집 ‘어떻게들 살고 계십니까’에는 자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겪는 애끊는 고통이 생생히 담겨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자살자 1명이 생길 때마다 주변 사람 5명에서 10명이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연간 자살자 수(1만3,513명ㆍ2015년 기준)를 감안하면 지난 10년간 자살 사별자 수는 7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반인과 비교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은 7배, 자살 위험은 8.3배 높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있다. 중학생 손녀가 자살한 C씨는 “제대로 먹지도 잠을 청하지도 못했다. 사고 후 17일 만에 8㎏이 빠졌고 남은 사람 중 누군가 무너져 내리면 모든 가족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다”며 “자살 사별자는 고인을 따라가고 싶어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고 썼다.
죄책감도 평생을 따라 다닌다.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 했던 D양은 “남겨진 우리는 서로 자기 탓을 했다”며 “내가 더 잘할 걸, 내가 너무 속을 썩여서. 남은 것은 끝없는 자기비하와 고통뿐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회복지사로 전업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거나(어머니가 자살한 E씨) 술ㆍ담배를 끊고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면서(20대 아들이 자살한 아버지 F씨) 정상적인 삶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나중에 만나면 아버지가 다행스러워하게, 자랑스러워하게 그렇게 살겠습니다”(딸 G씨)는 다짐과 함께.
수기집은 오는 31일부터 교보문고 7개 지점에서 총 2,500부가 무료 배포된다.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에서도 전자책으로 무료로 받아 볼 수 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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