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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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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입력
2017.03.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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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올라왔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3년, 정부가 인양을 공식 결정한 지 2년만이다. 그 오랜 시간 내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더니 세월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는 만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처참한 몰골의 세월호가 올라오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인양이 시작된 3월22일은 파면 당한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날이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던가. 지난 겨우내 광장에서 외쳤던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세월호가 인양된 만큼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역시 미수습자를 찾아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던 진실을 인양하는 것이다. 대략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세월호는 왜 무리한 항해를 했는가? 둘째,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셋째, 사고 뒤 왜 구조를 하지 않았나? 넷째, 아직도 진상규명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월호의 항해, 침몰, 구조, 사후대처라는 모든 국면에 걸쳐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시중에는 잠수함 충돌설부터 인신공양설까지 여러 가설과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괴소문과 음모론이 횡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상식적으로 납득할만한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체가 완전히 수면 위로 올라와 육안으로 어느 정도 관찰이 가능한 지금 잠수함이나 기타 외부 충격에 의한 침몰설은 설득력이 약해졌다. 물론 지금 눕혀져 있는 좌현을 자세히 볼 수 없고 다른 부분도 보다 정밀하게 조사를 해야겠지만 선저와 우현에 크게 파손된 흔적이 적어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 충격설을 주장한 사람들이 비난 받아서는 안 된다. 주어진 정보를 취합해 내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이미 알려진 사실들과 모순되지 않는 가설을 세워 현상을 설명하는 작업은 과학의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널리 유통될수록 더 좋은 설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흐르고 데이터가 쌓이면 초기의 수많은 아이디어 중 상당수는 폐기된다. 결국에는 유력한 가설 한둘만이 살아남는다.

세월호가 좀 더 빨리 인양되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고, 많은 논란도 정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직도 공개되지 않는 군경의 자료들, 대통령의 7시간, 국정원과의 관계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수많은 음모론과 괴담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힘을 가진 정부와 공권력의 행태는 정반대였다.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했고 세월호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를 문제 삼아 부산국제영화제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진 것도 세월호 때문이었다. 세월호를 인양하는 와중에도 작업의 편의만을 앞세워 중요한 증거가 될 수도 있는 선체 구조물을 하나씩 훼손하고 있다. 새로운 의혹과 논란만 양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둘러싼 논란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월호가 완전 부양된 이튿날인 26일은 서해에서 천안함이 침몰한지 7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사고전말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적인 합동조사단까지 꾸려졌으나 공식 조사결과에 대한 의문은 끊이질 않았다. 사건의 중요성이나 논란의 강도에 비해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의견개진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른바 ‘1번 어뢰’가 발견되고 그 흡착물의 성분이 논란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이유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괜히 잘못 나섰다가 정부에 찍히면 대놓고 험한 꼴을 당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앞으로는 연구비 한 푼 없이 지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똑똑한’ 과학자들은 그때 이미 블랙리스트를 예감했던 것일까.

며칠 전,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서 청산해야 할 적폐를 딱 하나 꼽으라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그런 단 하나의 적폐는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인 적폐는 여기저기서 얽히고설켜 어느 하나를 자른다고 해서 사회 곳곳을 옭아매고 있는 악의 넝쿨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사사건건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창의적인 연구를 기대하긴 어렵다. 진실이 손쉽게 침몰하는 부조리의 바다에서는 천안함도, 세월호도, 과학기술도 어둠에 묻힐 뿐이다.

그 부조리의 정점에 있던 대통령은 이제 파면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하던 비선실세는 감옥에 가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7시간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적폐의 넝쿨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도 질기다.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은 그래서 켜켜이 쌓인 넝쿨을 통째로 청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3년의 세월을 이기고 물 위로 떠오른 세월호를 보니 그 동안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울려 퍼졌던 노랫말이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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