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4기 환자도 수술… 협진 구축해 치료
항문, 배설 같은 이야기를 하면 ‘저질’ 취급 받기 십상이다. 대장, 항문 등이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삶을 유지할 수 없지만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20년 넘게 매일 이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안창혁(54) 부천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다.
“외과전문의 자격 취득 후 다른 의사들이 ‘냄새 난다’ ‘지저분한 것을 어떻게 매일 보고 사느냐’고 기피하더군요. 하지만 희한하게 거부감이 없었어요. 오히려 대장암 치질 항문질환 등 다양한 환자군을 치료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죠. 20년 넘게 매일 들여다보니 거부감도 사라졌습니다.”
대장암은 고위험 암 가운데 가장 ‘핫’한 암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대장암 진료환자는 2006년 6만8,240명에서 2015년 13만3,297명으로 6만5,057명(95.3%)으로 증가했다. 대장암은 유전 요인과 함께 포화지방이 많은 동물성 지방을 과다 섭취하면 생길 수 있다. 안 교수는 “특히 붉은색을 띈 육류를 많이 먹으면 대장암에 걸릴 수 있어 평소 동물성 식단을 줄이는 등 건강한 식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검진 대중화로 “대장용종을 제거하고 왔다”고 말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선종성용종 유암종 악성용종 등은 대장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조기 발견해 없애야 한다. 안 교수는 “40대 이상 연령층에서 대장용종이 많이 생기기에 이들 연령층은 대장내시경검사 등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며 “용종을 제거했거나, 가족력 있는 사람은 2~3년마다 검사 받아 암이 생겼는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대장내시경검사는 위내시경과 달리 검사 받기 전에 약을 먹어 장을 비워야 하는 등 검사가 까다로워 기피하는 사람이 많다”며 “하지만 대장암을 조기 발견하지 않으면 예후가 좋지 않아, 힘들어도 대장검사를 받는 게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최근 부천성모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은 74세 환자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평소 술과 담배, 육식을 즐겼지만 한 번도 대장검사를 하지 않았다.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지만 다행히 수술이 잘돼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수술 후 이 환자는 안 교수에게 “젊었을 때 대장검사를 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며 “나 같은 우둔한 사람이 없게 교수님이 신경을 잘 써달라”고 했다.
“나도 대장내시경 검사한다”고 권유
강원 춘천시에서 자란 안 교수는 처음에 서울대 공대에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의사의 길을 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섬유공학을 전공하면서 공학도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느껴 의대에 다시 진학했다. 안 교수는 “내 손으로 병을 고칠 수 있는 외과의사가 천직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환자 신뢰를 받는 의사’가 되는 게 안 교수의 바람이다. 외래진료할 때 대부분의 환자가 대장내시경검사를 꺼린다. 그럴 때마다 안 교수는 “힘든 것 잘 알지만 나도 10년 전부터 대장내시경검사를 받고 있다”며 검사를 권유한다. 담당 교수가 10년 전부터 검사를 받고 있다는 말에 환자는 순순히 받아 들인다. 안 교수는 “검사 후 대장용종을 제거하거나 암이 발견돼 조기 치료를 통해 완치된 이들이 많다”며 “처음에는 환자를 설득하기 위해 검사를 받았는데 이 때문에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대장암 치료는 수술이 기본이다. 안 교수는 “전에는 대장암 3, 4기 환자에게는 수술을 권하지 않았지만 최근 4기 환자도 수술이 가능하다”며 “소화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대장암 치료 관련 진료과와 협진해 수술은 물론 표적치료 면역치료 항암치료 등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외과의사=칼잡이’라는 공식을 거부한다. 그는 “외과의사가 수술만 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특히 대장암 치료는 다른 진료과 전문의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기에 치료 전반의 정보와 지식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대화할 때 눈을 보면 그 사람 성격을 알 수 있다. 안 교수는 인터뷰 내내 기자의 눈을 피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다. 환자를 위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참 눈이 선한 외과의사임을 직감했다. 그가 지난해 12월 의정부성모병원에서 부천성모병원으로 이직했을 때 병원식구들이 “병원에 참 좋은 분이 오셨다”며 반긴 이유를 알 것 같다.
“외과의사는 내 손으로 환자를 살리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잃으면 환자도 의사도 모두 죽습니다.” 처음 수술방에 들어갔을 때 마음을 유지하며 환자를 돌보고 있다는 안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대장항문 치료를 하면서 많은 것을 얻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믿음이 가는 외과의사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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