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시절 주한미군 철수, 한국 핵무장 용인,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 한국을 강하게 몰아붙인 때문인지 대부분 한국인들은 그가 한국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그와 측근들의 언행, 주요 부처의 일처리 과정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좌충우돌 행보와 미국 주류언론과 싸우는 바람에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트럼프 정권의 친한(親韓) 성향이 드러난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사례 – 미 국무부 홈페이지서 ‘일본해' 표기 삭제
트럼프 정권 이후 미 국무부는 홈페이지(www.state.gov)를 개편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워싱턴 특파원들에게 국무부 등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민감한 문제인 독도ㆍ동해를 어떻게 표기하는지는 큰 관심사입니다. 그런데 국무부 ‘비자ㆍ영사국’의 한국과 일본 지도 표기가 이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와 달라졌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때에는 미국의 공식입장에 따라 독도를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해 한일간 분쟁이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면서도, 동해는 ‘일본해’(Sea of Japan으로 단독 표기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개편된 해당 지도에는 독도에 대해 지리적 표시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견이 있다고 표시하는 한편, 동해에 대해서도 일본해라는 표기를 생략했습니다. 센카구(중국명 다오위다오) 열도, 러ㆍ일간 분쟁지역인 북방 도서에 대해서도 일체의 지리적 표시를 하지 않은 걸 감안하면, ‘동해’ 표기를 ‘일본해’ 표기와 같은 위상에 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비자ㆍ영사국’이 ‘해당 지도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고 있기는 합니다.
두 번째 사례 – ‘미국 우선주의’ 경제정책의 모델은 한국이다
‘반 이민행정명령, ‘오바마케어 폐지’ 등에 실패하면서 초반 난조를 겪고 있지만, 트럼프 정권은 세제개혁과 1조달러 규모의 과감한 인프라 투자 등 ‘미국 우선주의’ 경제정책을 펴겠다는 각오가 여전합니다. 그런데 26일 인터넷을 통해 미리 공개된 뉴욕타임스 4월2일자 주말매거진 기사에 따르면 한국은 트럼프 정권이 닮고 싶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주말매거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스티브 배넌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미국 우선주의’ 인프라 투자 정책의 모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경제적 민족주의는 정교하고 잘 짜인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과 같은 강력한 고속데이터통신망, 독일의 도로, 프랑스의 철도시스템 같은 것을 말한다. 세계 일류가 되려면 일류 수준의 기반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사례 – 한국의 방위분담금
트럼프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이 공개적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방위분담금에 대해서도 트럼프 정권 내부에서 북대성양조약기구(나토) 수준의 불만이 나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의 방위비 지출 수준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됩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다수의 트럼프 정권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으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전력에 대해서만 물은 게 아니라 한국이 방위비를 얼마나 부담하는지 줄곧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후 대북정책에서 방위비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더 이상 한국이 ‘안보에 무임승차’하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 가지 사례가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 트럼프 정권과의 관계에서 너무 위축되거나 수세적일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인 것 같습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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