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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법행정 개선하라”는 판사들 요구 흘려 듣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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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법행정 개선하라”는 판사들 요구 흘려 듣지 말아야

입력
2017.03.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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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25일 연세대 법학연구원과 함께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최근 실시한 법관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에 응한 501명 중 대법원장ㆍ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대했을 때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우려한다는 법관이 88%를 넘었다. 행정부 등에 반하는 판결을 하면 보직 등에서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사람도 45.3%, 상급심 판단과 반대 판결을 했을 때 불이익을 우려하는 경우도 47%에 이르렀다. 대법원장에 상당한 권한이 부여된 대법관 제청 절차를 고쳐야 한다는 법관은 71% 이상이었고, 대부분의 법관들(97%)이 ‘법관 독립’을 위해 사법 행정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 판결과 결정을 해야 할 판사들이 상명하복식 권위주의 구조에 얽매여 있고 압도적 다수가 그런 현실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실태가 적나라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설문조사 발표를 놓고는 대법원의 조직으로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가 이를 축소하려 했다는 비판이 나와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법원행정처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각 지방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리는 등 집단 행동 움직임까지 일자 결국 법원행정처 차장이 재임용 철회의 형태로 사직하고 법관들의 요구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진 상태다. 설문조사 결과는 개혁이 필요한 사법부의 실태 일부를 공론화했다는 점만으로도 의의가 작지 않지만, 이 정도 문제제기조차 자유롭지 못하게 해 논란을 부른 사법부의 현실까지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욱 무겁다.

해방 이후 사법 체계가 갖춰진 뒤 여러 차례 사법 파동이 일었다. 공안 검사들의 판사 체포 등 권위주의 체제 아래 폭력적으로 이뤄진 사법권 훼손에 비하면 지금은 사정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민 정부 이후에도 법관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사법부 내에 고쳐야 할 구태가 여전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이날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김영훈 서울고법 판사는 “기수와 서열에 따른 체계, 전보와 발탁, 승진, 재임용 등 인사제도로 법관 관료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 행사는 법원 내 가장 강력한 승진 기제로 작용해 사법부의 관료화와 서열화를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이번 설문조사 내용은 물론이고 발표 과정의 논란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까지를 밑거름 삼아 사법부의 권위주의 구조 혁신을 위한 숙의와 실천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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