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양단 시간과의 사투
유속 빠른 조류 타려 3시간 허비
반잠수선 향한 출발도 늦어져
반잠수선 위에 올리는 정밀 작업
소조기 종료 210분 남기고 돌입
우주선 도킹하듯 반잠수선 위로
밤 12시 넘기기 전 한가운데로
24일 오후4시55분 인양선박(잭킹바지선) 2척 사이에 묶인 세월호가 침몰 사고 해역에서 남동쪽으로 3㎞ 떨어진 반잠수식 선박인 ‘백새치’ 화이트 마린(White Marlin)호를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과 교사 등 총 476명의 승객 중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가 ‘지옥도’를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침몰 해역을 떠난 것은 2014년4월16일 참사 이후 1,074일 만이다.
이날 세월호 인양과 이동 작업은 시간과의 사투였다. 밤12시 이후 물살이 빨라져 더 이상의 작업이 어려워지기 전에 세월호를 반드시 반잠수선 위에 선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촌각을 다퉈야 할 상황에도 작업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었다. 우선 세월호가 수면 위 13m까지 떠 오른 시점은 예정보다 24시간이 지난 뒤였다. 당초 해수부는 “23일 오전11시 세월호가 완전 부양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 본인양이 완료된 건 24일 오전11시10분이었다. 좌현 배꼬리(선미) 차량 통로 출입문(램프)을 제거하는 데만 10시간45분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높이 11m, 폭 8m, 두께 10㎝의 철판을 절단하는 작업은 갈 길 바쁜 인양단의 발목을 잡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하이샐비지는 시야가 거의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도 잠수사 2명을 번갈아 투입하며 밤샘 수중 용접 작업을 벌였다. 수중 용접의 능률은 육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때문에 잠수사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중국인 잠수사들도 인양을 성공리에 마쳐야 고국으로 빨리 돌아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작업에 임한 것으로 안다“며 “오전 중 램프 제거 작업이 끝날 수 있었던 건 잠수사들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가장 애를 끓인 건 동거차도 앞바다에서 인양된 세월호의 출발이 계속 지연됐을 때다. 예인선 5척이 끄는 세월호가 반잠수선을 향해 출발한 건 이날 오후 4시55분이다. 당초 오후 2시 출발 예정이었던 세월호는 유속이 빠른 조류를 탈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3시간을 대기했다. 유속이 빨라지는 중조기(25일부터)를 불과 7시간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매초가 아쉬웠지만 자칫 방향을 잘못 탔다간 시간이 더 낭비될 수도 있다는 게 인양단의 판단이었다.
세월호는 출발 3시간35분만인 오후 8시30분 반잠수선 인근 200m까지 접근해 선적 작업에 돌입했다. 이철조 해수부 세월호인양추진단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조기가 끝나는 밤 12시까지 세월호를 반잠수선에 선적하는 작업을 끝내겠다”고 강조했다. 25일부터는 조류가 빨라지는 중조기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25일 오전9시 반잠수선이 위치한 해역의 유속은 초속 0.7m로 전날(0.6m)보다 급해진다. 해양조사원 관계자는 “소조기를 넘기면 하루에 20%씩 유속이 빨라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인양단은 밤12시까지 3시간30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세월호를 반잠수선 위에 올려 놓는 작업을 벌였다. 수심 13m 아래 잠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반잠수선의 갑판(데크) 위로 세월호가 마치 우주선이 도킹하듯 진입했다. 다행히 세월호는 자정을 넘기기 전 반잠수선 한가운데에 놓여졌다. 이후 세심한 조정 끝에 반잠수선을 1.5m 부상시키면서 세월호에 부착된 리프팅 빔과 반잠수선 위 받침목을 맞대는 작업이 이어졌다. 선적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다. 진도=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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