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로힝야족 문제 해결을 위한 ‘라카인자문위원회’(위원장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수도 양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한 범죄 등 갈등 해결에 관한 중간 권고안을 발표했다.
라카인자문위원회는 권고안을 통해 과거 1982년 시민권을 박탈당한 로힝야족과 후손들이 과도한 인증 절차 없이 시민권을 재신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라카인주 내 ‘국내 피난민 캠프’(이하 난민캠프)는 모두 폐쇄하라”고 권고했다. 역대 미얀마에서 구성된 유관 위원회 중 캠프 폐쇄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8월 미얀마 정부에 의해 구성된 이래 줄곧 갈등 당사자인 로힝야족을 배제했다는 비난에 휩싸였던 라카인자문위원회가 이번 중간 점검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제시한 것이다.
로힝야족 집단 거주지역인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는 수십만 로힝야족이 정부의 통제 하에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라카인주 내 40여곳의 난민캠프에 갇힌 난민만 12만여명. 난민캠프라지만 사실상 ‘게토’(중세시대 유대인 강제격리 구역)에 가깝다. 난민캠프에 지원되는 구호물품 및 활동은 거의 전무하고 그나마 지어진 한두 곳의 의료 시설은 간판만 있을 뿐이다. 2012년 6월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 논란이 불거진 불교도와 무슬림 간 유혈충돌 당시 미얀마 군은 시한까지 설정하며 로힝야족을 캠프로 강제 이주시켰다. 한때 무슬림과 불교도가 공존하던 라카인주 중심도시 시트웨 거리에서 이제 로힝야족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트웨 시내 유일하게 남은 로힝야 구역 아웅 밍갈라에서는 심지어 일부 주민이 철조망과 검문소에 둘러싸여 이동의 자유를 박탈 당한 채 생활하고 있다. 이들이 도보로 5분 거리의 시장에조차 드나들지 못한 세월이 벌써 4년을 넘겼다. 극단적인 백인우월주의로 지구촌을 경악하게 했던 남아공의 인종차별ㆍ분리정책 ‘아파르트 헤이트’는 지금 미얀마에서 매일 같이 재현되고 있다.
로힝야족은 캠프 설립 이전에도 수십년간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가 입수한 라카인주의 ‘2009 지역명령 1호’에 따르면 로힝야족의 이동 허가 요청은 최소 일주일전에 이뤄져야 한다. 이후 매 절차마다 공무원이나 군인들에게 1,000짯(약 820원)씩 ‘찔러’ 줘야 이동 허가를 요청하기 위한 문서를 손에 쥘 수 있다. 2012년 6월 학살로 약혼자를 잃은 로힝야 여성 띠다(가명)는 그해 1,000달러 이상의 뇌물을 바쳐가며 이 절차를 거친 뒤 양곤으로 피신했다. 그는 양곤에서 또다시 ‘뇌물여권’을 만든 후에야 미얀마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힝야들은 주로 불교도인 마을 이장에게 바칠 1,000짯도 없는 실정이다.
로힝야 차별정책은 이동의 자유만 제약하는 게 아니다. 1990년에는 로힝야에게만 적용되는 결혼 사전허가제가, 1993년에는 로힝야에게만 강요되는 산아제한 정책이 주정부 차원에서 시행됐다. 2005년 이후 로힝야족은 두 자녀 넘게 낳지 않겠다는 조항에 동의해야만 결혼 허가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자녀 둘을 초과하거나 혼외 자녀를 두면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러한 규제를 담은 2008년 라카인 주정부의 ‘인구통제정책’ 문서에 따르면 로힝야족에 대한 산아제한을 위해 당국은 약물과 주사 처방 및 사용까지 허용하고 있다.
라카인주에서만 시행되던 결혼ㆍ출산 규제는 이제 전국으로 확산될 기로에 놓였다. 극단주의 불교승려 조직인 ‘종족종교 수호위원회’(이하 마바타)는 2014년 9월 로힝야족의 출산 간극을 최소 36개월로 제약하는 등 인종ㆍ종교 차별과 여성혐오를 노골화한 ‘종족종교수호법안’ 4개를 발의했고, 이듬해 미얀마 의회는 해당 법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당시 우 위라뚜 마바타 대표는 “로힝야들이 미얀마 전역을 덮어버리기 전에 취해야 할 조치다”라는 후안무치의 이유를 제시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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