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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달걀이 궁금하다

입력
2017.03.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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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훈 포토그래퍼
강태훈 포토그래퍼

“이쁜아!” 하고 부르면 ‘이쁜이’가 저 멀리서 두 발로 겅중겅중 달려 온다. 계사 문을 열고 “들어가” 하면 쪼르르 문 안쪽으로 들어간다. 농부가 키우는 이쁜이는 때로 집 안에 들어와 농부의 배 위에 앉아 게으른 한때를 보내기도 한다. 이쁜이는 농부 지각현씨가 키우는 ‘하이라인 브라운’ 암컷이다. 하이라인 브라운은 대표적 산란계(알 낳는 닭)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에 있는 지씨의 ‘등고개 농장’에는 이쁜이뿐 아니라 ‘이쁜이2’ ‘애꾸’ ‘삐닭이’까지, 이름 붙인 닭이 여럿이다. 지씨는 1,000수 조금 넘는 닭을 키우고 있다. 700여수의 하이라인 브라운, 300여수의 ‘청계’, 그리고 ‘한협2호’ 토종닭도 소수 키우니, 달걀 농장이 그 정체성이다. 닭들은 자고 싶을 때 자고, 모래 목욕을 하고 싶을 때 모래를 뒤집어쓰고, 뛰어다니고 싶은 만큼 멀리 다니고, 먹고 싶은 만큼 벌레를 잡거나 풀을 뜯어 먹는다. 하지만 이 농장은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은 곳은 아니다. 동물복지 인증은 4,000수 이상, 동물복지 자연방목 인증은 2,000수 이상 키우는 농가가 대상이다. 지씨는 “동물복지ㆍ자연방목 기준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이라고 자랑한다. 지씨 농장 닭들은 통현미, 귀리, 고추씨, 통밀, 통보리, 미강, 숙성 볏짚, 숙성 콩비지, 산야초, 표고버섯, 천연 발효 식초, 숯, 게 껍질, 조개 칼슘, 말린 새우, 멸치, 메뚜기, 지렁이, 지장수, 청초액, 마늘, 오렌지, 부추, 솔잎, 매실, 고추, 바나나 등 200여 가지 발효액을 비롯해 화려한 재료로 만든 먹이를 먹고 알을 낳는다. 물론 조류인플루엔자(AI) 재난에서도 비껴가고 있다.

등고개 농장의 하이라인 브라운 달걀을 한 알 깨 보니 힘 좋게 봉긋 솟아 있는 노른자에 흰 구름처럼 흰자가 높게 붙어 있다. 신선한 달걀의 특징이다. 커드(Curdㆍ우유 응고물) 같은 질감의 탄탄한 노른자는 그대로 먹어도 고소하고 감칠맛이 풍부하다. 불쾌한 향이라곤 한 오라기도 나지 않는다. 참 맛있는 달걀이다.

국내 산란계의 70%를 차지하는 품종인 하이라인 브라운. 갈색 달걀을 낳는 외래 품종이다. 등고개 농장의 닭들이다. 맛워크숍 제공.
국내 산란계의 70%를 차지하는 품종인 하이라인 브라운. 갈색 달걀을 낳는 외래 품종이다. 등고개 농장의 닭들이다. 맛워크숍 제공.

맛있는 달걀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첫째가 신선도다. 달걀의 노른자와 흰자는 병아리의 먹이다. 달걀은 병아리 태아의 자궁인 동시에 도시락통이다. 우유와 마찬가지로 달걀도 냉장 유통이 중요하다. 서늘한 온도에서 활동을 저지해야 신선도가 유지된다. 신선하지 못한 달걀은 수분을 잃고 흐물흐물해진다. 달걀도 냉장 유통 체계가 갖춰져 있지만 이 ‘콜드 체인’이 완벽하지 않다. 기껏 냉장차에 운송된 뒤 소매점에서 실온에 진열되는 경우가 너무나 잦다. 여름철 혹서기에는 유통 중 부화 온도인 섭씨 37.8도에 도달해 병아리가 수정되고 발육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재래 닭 상품화를 연구 중인 손시환 경남과학기술대 교수는 “닭이 혹서기에 잘못 유통되면 배자의 발육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발생하다 만 병아리 태아를 먹게 되는 셈”이라며 “온도 변화로 인해 달걀 안에서 병아리 태아가 죽었을 때는 부패가 진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맛을 위해 유정란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며 “다만 유정란을 더 건강한 닭이 낳은 것으로 보는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유정란은 암탉과 수탉을 풀어 놓고 기르는 방사 환경에서 얻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방사한 달걀은 그렇다면 더 좋은 달걀일까? 손 교수에 따르면 달걀의 품질은 통념과 달리 케이지식 사육 방식, 즉 폐쇄된 공간에서 자동화 방식으로 생산한 달걀이 오히려 높다. 맛은 방사가 낫다. “계란 껍질에 사료 냄새가 배어 나오면 비린 향이 날 수 있는데, 방사할 경우 상대적으로 이 냄새가 덜하다”는 것이 손교수의 설명이다. 달걀에는 미세한 숨구멍이 촘촘하게 뚫려 있다. 농촌진흥원 강보석 연구관 역시 “방사한다고 해서 무조건 품질이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 달걀을 거두는 방사 환경보다 케이지 사육이 더 유리한 측면도 있다. “대형 양계장에서는 달걀이 산란되자마자 벨트를 통해 운반돼 세척, 포장까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산란 후 출하 시점으로 보면 가장 빠르고 위생적이다.” 손시환 교수의 설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달걀은 닭의 항문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꼭 씻어야 할까? 유럽에서는 세척하지 않는다. 닭도 진화한 생물이다. 산란 때 큐티클 액이 분비돼 달걀 껍데기가 거칠거칠하게 코팅된 상태로 나온다. 반투과성을 지닌 자연 보호막인 큐티클 막은 외부 균의 침투를 막아 준다. 미국, 일본에서는 달걀 세척이 의무다. 김상호 농촌진흥청 가금연구소 연구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달걀 세척은 식중독을 유발하는 살모넬라 엔터라이티디스균 등 닭 분변의 균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인증 시 이 균에 대한 검사도 하기 때문에 비세척란도 안전하다. 달걀을 채소류처럼 씻어서 사용하면 위생엔 문제가 없다.”

달걀 세척액으로 염소계 소독제가 사용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수영장 물과 수돗물처럼 인체에 무해하다고 확인된 농도로 사용한다. 보호막을 잃은 세척란도 저온에 보관을 하면 한 달 정도는 신선도에 큰 문제가 없다.

특란이나 왕란 같은 큰 달걀, 또는 처음 낳은 달걀이라는 초란이 더 맛있는 달걀일까? 2003년 도입된 달걀 등급제는 자율 사항이다. 등급은 두 가지 지표로 나뉜다. 중량에 의해 44g 이하는 소란, 52g 이하까지 중란, 60g 이하까지 대란, 68g까지가 특란이고 왕란은 68g 이상이다. 달걀의 크기는 산란계의 나이에 따라 결정된다. 알을 많이 낳을수록 커진다. 산란계는 70주경에 도태되는데, 그 전의 전성기 닭들이 특란과 왕란을 낳을 수 있다. 산란율이 떨어진 닭은 고통스러운 ‘강제 환우’를 거쳐 다시 특란, 왕란을 낳는다.

초란은 이 기준으로 보자면 44g 이하의 등급 외 분류인 경란에 속하는데, 닭은 군집 사육을 하기 때문에 어느 닭이 처음 알을 낳는지, 어느 알이 처음 나온 달걀인 지 알 길이 없다. 초란은 산란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닭의 알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강보석 연구관은 “일반적으로 산란을 시작하고 2주 정도까지는 초란으로 구분된다. 이 시기엔 배란이 일정하지 않아 달걀 중에 노른자가 둘인 쌍란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다른 한 등급은 물리적인 특성에 대한 등급이다. 난각 표면에 돌출된 것이 없고, 기실(달걀 안의 공기 주머니)의 깊이가 정상 범위이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실금이 없으며, 달걀 생성 중 섞일 수 있는 혈액이 함유돼 있지 않아야 한다. 이 특성을 모두 가진 달걀이 a등급을 받는 정상란이다. 1+ 등급은 같은 날짜에 산란된 달걀 샘플 중 a등급이 70%, b등급이 90% 이상일 때 매겨진다.

달걀의 품질 등급을 가르는 또 하나 중요한 평가기준은 호우 지수(Haugh Unit)다. 노른자와 흰자가 얼마나 탱탱하게 솟아 있는가를 측정하는 신선도 지표인데, 극단적으로 신선한 달걀은 120까지도 나온다. 이 숫자가 72 이상인 것이 a등급이고 60 이상인 것이 b등급이다. 따라서 가장 높은 1+등급 달걀은 정상란인 동시에 신선한 달걀이라는 의미다. 소고기, 돼지고기와 달리 달걀은 신선도가 품질 평가에 반영된다. 소고기의 근내 지방처럼 맛과 객관적으로 연결되는 특질이 신선도이기 때문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평가관리팀 전승엽 차장의 달걀 품질 관리 절차 설명. “등급 판정 받은 달걀은 소비자가 구매하는 시점까지 등급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등급란은 꼭 냉장 유통할 것을 권한다. 전국 소매상에서 무작위로 등급란을 수거해 품질 검사를 하고 있고, 품질 저하가 발견되면 집하장에 알리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혹시 토종닭과 일반닭의 살맛이 다른 것처럼 토종닭의 달걀이 더 맛있는 건 아닐까? 달걀 껍질 색 에 따라 맛이 나를까? 그렇지 않다. 애초에 재래종, 토착종과 오골계까지 포함해 총 12종의 토종닭 중엔 산란계가 없다. 육계는 산란계에 비해 알을 많이 낳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산란계는 모두 외래 품종이다. 하이라인 브라운이 70%, 이사 브라운이 5%, 로만 브라운이 25%로 모두 갈색란을 낳는데, 품종으로 인한 차이는 없다. 흰 달걀도, 청계의 푸른 빛 도는 달걀도 마찬가지다. 달걀 껍질의 색은 암탉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물일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결국 달걀의 맛은 다시, 신선도다. 그리고 똑같이 신선한 달걀이라면 맛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단 하나, 닭이 먹은 사료다. 필요한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는 신선한 사료를 먹어야 맛있는 달걀이 나온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3월 현재 한국에는 인구보다 많은 1억3,691만2,782 수의 닭이 살고 있다. 그 중 4,597만2,571수가 산란계다. AI 발생 이후 35%가 감소한 수치다. 한국은 1인당 매년 254개의 달걀을 소비하는 달걀 소비 대국이다.

자문한다. 우리는 맛있는 달걀을 선택했는가? 단지 저렴한 달걀을 골랐던가? 마트나 시장 한 쪽에는 한 알에 200원도 하지 않는 그냥 달걀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각현씨의 달걀처럼 한 알에 1,000원이나 하는 유정란이 있다. 맛과 가치의 선택은 소비자 개개인의 몫이다.

김상호 연구관은 ‘달걀의 맛’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생산된 달걀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이 구매로 이어져야 생산자도 친환경적인 맛있는 달걀을 생산할 수 있다. AI 때문이 아니더라도 달걀 생산자들이야말로 고밀도 사육에 대한 피로감과 문제점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기왕이면 더 맛 좋은 달걀을 먹고 싶은 마음, 그리고 가치 있는 식재료를 생산하고 싶은 마음은 결국엔 같을 것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사진 강태훈 포토그래퍼

달걀의 세련된 변신

19일 서울 경리단길 식당 ‘한국술집 21세기 서울’에서 ‘맛 워크숍-31을 더하고 23을 뺀 맛’이 열렸다.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농사펀드(farmingfund.co.kr), 한국술집 21세기 서울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로, 식재료를 생산하는 농부와 요리사가 함께 소비자들을 만난 자리다. 매달 열릴 예정인 워크숍의 첫 주제는 달걀. 한국술집 21세기 서울 김봉수 셰프가 지각현 농부의 달걀과 토종닭으로 요리한 음식은 닭이 맘껏 뛰노는 자연 풍경과 반대 지점에 있는 것이었다. 분자요리 등 현대의 현란한 조리법이 동원됐고 음식과 술은 고급스러운 자기에 담겼다. 한 치라도 더 야생에 가까워지길 지향하는 산지와 가장 세련된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음식문화가 드라마틱하게 만났다. 달걀과 닭의 극적인 변신을 살짝 소개한다.

냉이 계란찜. 달걀 껍질을 용기로 사용해 표고 육수에 달걀을 풀어 쪘다. 위에는 냉이 파우더를 뿌리고 팽이버섯 초절임과 청어알젓으로 마무리했다. 표고버섯이 바닥에서 살짝 씹힌다.
냉이 계란찜. 달걀 껍질을 용기로 사용해 표고 육수에 달걀을 풀어 쪘다. 위에는 냉이 파우더를 뿌리고 팽이버섯 초절임과 청어알젓으로 마무리했다. 표고버섯이 바닥에서 살짝 씹힌다.
달걀 프라이가 아니다. 노른자는 한라봉으로 만들었고 흰자는 컬리플라워로 만든 분자 요리다. 땅두릅, 원추리, 세발나물, 초석잠을 샐러드처럼 무쳤고 달걀은 간장에 담가 치즈처럼 굳힌 후 샐러드 위에 갈아 뿌렸다.
달걀 프라이가 아니다. 노른자는 한라봉으로 만들었고 흰자는 컬리플라워로 만든 분자 요리다. 땅두릅, 원추리, 세발나물, 초석잠을 샐러드처럼 무쳤고 달걀은 간장에 담가 치즈처럼 굳힌 후 샐러드 위에 갈아 뿌렸다.
닭 목껍질에 토종닭 가슴살과 다리살 익힌 것을 넣었다. 아래는 트러플 오일로 향을 낸 보리, 우엉, 모래주머니 리소토가 깔려 있다. 노란 단무지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달걀 노른자. 저온에서 익혔다.
닭 목껍질에 토종닭 가슴살과 다리살 익힌 것을 넣었다. 아래는 트러플 오일로 향을 낸 보리, 우엉, 모래주머니 리소토가 깔려 있다. 노란 단무지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달걀 노른자. 저온에서 익혔다.
달걀 노른자로 만든 디저트 에그 타르트와 우유 아이스크림.
달걀 노른자로 만든 디저트 에그 타르트와 우유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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