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검찰총장이 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와 관련, “그 문제는 오로지 법과 원칙, 수사진행 상황에 따라 판단돼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 총장이 박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 방침에 대해 입을 연 것은 처음이어서 의미가 가볍지 않다.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말은 결연한 의지를 강조할 때 검찰이 주로 쓰는 수사다. 검찰 수장이 원칙에 따른 결정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법률과 사실관계로 보면 판단은 어렵지 않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파악된 대부분의 범죄 혐의(13가지)에 박 전 대통령이 공범으로 지목된 상태다. 가히 비위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이런 혐의와 관련한 일부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공범이나 관련자들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혐의사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무엇보다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중형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삼성으로부터 받은 수백억 원이 뇌물로 인정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통상 범죄의 중대성 여부를 영장 청구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검찰로서는 이를 외면하기 어렵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도 ‘증거 인멸’우려를 높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혐의를 입증할 물증과 진술이 넘치는데도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수사를 방해하는 셈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불구속 수사론은 대선 국면에 들어선 정치 상황과 전직 대통령이라는 ‘특수 신분’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대선을 앞두고 구속에 따른 정치적 득실을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기 시작한 것도 권력형 비리 사건 처리에서 청와대 등 정치권력을 의식한 데서 비롯됐다. 전직 대통령 신분도 ‘전직 대통령이니까 예우해야 한다’가 아니라 ‘전직 대통령이라도 이런 잘못을 하면 구속된다’는 전례를 만든다는 데 의미를 둬야 한다. 무너진 법치주의를 다시 세운다는 차원에서도‘법 앞의 평등’은 지금 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가치다.
검찰의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 결정이 늦어지면 불필요한 논란과 의심만 키우게 된다. 그 자체가 선거 쟁점이 돼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정치적 결정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김 총장의 신속하고도 과감한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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