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가 진료실수 인정해도
병원이 협의 거부하면 그만
분쟁조정 신청 28% 늘었지만
“작년 12월 시행 전 피해자도
조정절차 밟도록 법 개정해야”
“신랑 이름이 뭐야.” “코끼리요.” 코끼리는 정모(40)씨가 남편을 가리키는 애칭이 아니다. 정씨는 의료사고로 ‘뇌병변1급’ 장애를 얻었다. 지능이 초등학생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물론 남편 이름도 기억을 못해 본인이 좋아하는 “코끼리”라고 부른다. 몸 오른쪽은 모두 마비됐다.
악몽은 2013년 5월 시작됐다. 대전 한 사립초등학교 교사던 정씨가 서울 A종합병원에서 뇌종양 진단을 받고 시술을 받으면서다. 당시 주치의는 “뇌 일부분이 막혀있는데 그걸 뚫어주면서 종양을 걷어내는 간단한 내시경 시술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간단하다’는 시술은, 뇌 신경이 손상되는 ‘중대한’ 실수로 이어졌다.
주치의는 두 달 동안 잠적했다가 결국 실수를 인정했다. 보험사에서도 잘못된 시술로 인한 손해로 판단했다. 문제는 병원. 병원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보상 협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정씨는 보통의 삶과 직장을 모두 잃은 채 매달 간병에만 200만원 이상 지출하고 있다.
의료사고로 사망이나 1급 장애를 얻는 등 회복 불가능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병원과 보상 협의조차 못한 채 방치돼 있다. 가수 신해철의 의료사고 사망 이후 병원 동의 없이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을 통해 피해 보상에 나설 수 있는 ‘의료사고피해구제및의료분쟁조정등에관한법률(신해철법)‘이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법의 구제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법이 시행되기 전 발생한 사고엔 적용되지 않는 탓이다.
방모(58)씨는 전북 W대학병원에서 만성뇌출혈 수술 도중 의사 실수로 몸 왼쪽 부분이 마비되는 증상을 겪고 있다. 2015년 9월쯤 뇌출혈 부위에 바늘을 꽂아 고인 피를 뽑아내는 시술을 받다 의료진 실수로 뇌에 바늘이 꽂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의료진은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보호자가 없는 상태에서 방씨와 3,900만원에 피해 보상을 합의했다. 방씨는 당시 말도 어눌해졌고 기억력도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로 보호자 없이는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뒤늦게 방씨 가족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병원은 방씨를 강제 퇴원시킨 뒤 ‘사고 피해 보상은 끝난 일’이라고 맞서고 있다. 방씨 측은 “병원에서는 우리 요구를 무시하고, 신해철법 시행 전에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중재원 문턱은 구경도 못해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4년 6월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제왕절개를 받은 양모(34)씨도 의사 실수로 자궁 중 일부를 뜯어내는 바람에 폐색전증에 걸렸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해철법 시행 전 의료사고 피해자들도 도움을 받도록 구제 대상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용환 의료전문변호사는 “법 시행 전 의료사고 피해자들도 조정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2016년 2월 접수된 의료분쟁 조정신청 건수는 374건, 법 시행 이후인 2016년 12월~2017년 2월은 28% 증가한 481건이 접수됐다. 혜택을 보는 이들이 늘고 있는 만큼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빈틈을 메워야 할 때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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