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진술에 예리한 시선과 뾰족한 비판이 담긴다. 세계의 불합리와 사람들의 위선을 기록하는 글은 “어렵지 않기에 해설을 붙이지 않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선명하고 건조하다. 그 끝에 허함이 남는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예보’ 부분)
2013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임솔아(30)가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시로 먼저 등단했지만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고 장편소설 ‘최선의 삶’을 먼저 출간했다. 시와 소설만큼이나 에세이도 탁월하게 쓴다. 예컨대 잡지 ‘포지션’에 발표한 칼럼 ‘당신들의 예술지상주의에 침을 뱉는다’는 예술계 성폭력에 대한 문단의 위선적인 반응을 비판하고 있는데 탄탄한 논리, 또렷한 목소리가 차분하면서 예민한 그의 시와 닮았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그는 “소설은 10대 때부터 혼자 써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쓸 것이 조금 더 남았다”고 말했다. “집과 학교를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가려고 했다”는 그는 고교 시절 학교를 중퇴했고(정확히 말하면, 집을 나가서 안 돌아갔더니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23세에 검정고시를 보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혼자 글을 쓰면서 살았다.
‘나의 시민들이 다시 도시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만 나는 도시를/ 망가뜨렸다.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더 오래 게임을 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나의 시민들에게 미안하지/ 않다. 아무래도// 미안하지가 않다. 약간의 사고와 불행은 나의 시민들을 더 성실하게 했다.’(‘아홉살’ 부분)
우리 사회 부조리를 은유하는 듯한 임솔아의 시는 “현실을 실감하는 능력,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고 잔인함을 느끼는 능력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대의 역량이 되었음을 이야기 한다”(문학평론가 김수이). 임솔아는 “세상은 너무 흉흉한데(그래서 날씨가 ‘괴괴하다’는 말을 새로 만들었단다), 우리는 ‘싸가지 없는 애가 되기 싫어’ 영혼 없이 상투적으로 착해지고 이런 모습이 제 시집 전체를 포괄한다”고 말했다. 시 ‘예보’의 한 구절을 따 시집 제목으로 지은 이유다.
뾰족한 문제의식은 글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시집을 내며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와 두 달 여 간 논의 끝에, 계약서에 출판계 처음으로 성범죄 관련 조항을 명시했다. ‘갑(작가)의 성폭력, 성희롱 그 밖의 성범죄 사실이 인지될 경우 을(출판사)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갑이 을로부터 성폭력, 성희롱 그 밖의 성적인 괴롭힘을 당한 경우 갑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판권에 게재해달라고 했던 ‘젠더, 나이, 신체, 지위, 국적, 인종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합니다’란 메시지는 시집 뒤표지에 실렸다.
임솔아는 습작생 시절이었던 2011년 중견시인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힘들어 시를 쓰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등단했고, 미리 써둔 시를 발표했다”는 시인은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아, 될 때까지 한편을 물고 늘어져 완성시킨 후 다시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쓴 시는 시집에 묶지 않았다. 지난해 ‘문단 내 성폭력’ 이슈 후 발간된 잡지 ‘눈치우기’에 단편 ‘추앙’을 발표하며 성폭력 경험을 커밍아웃했다. 그는 “성폭력이 이슈가 된 이후 시를 겨우 세 편 썼다”고 말했다. 시집 마지막에 수록된 시 ‘빨간’은 성폭력 이슈 부각 뒤 달라진 임솔아가 반영된 작품이다.
‘목소리는 어디까지 퍼져나가 어떻게 해야 사라지지 않는가 눈물을 흘리면 눈알이 붉어졌다 고통에 색이 있다면 그 색으로 나는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빨간’ 부분)
시집은 빨간색이다. 고통을 참아내거나 폭발시킬 때 피어나는 색으로 알려져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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