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3.23
1945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은 11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그들 중 임기를 온전히 채운 이는 6명(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고 나머지는 하야(이승만), 사임(윤보선, 최규하), 피살(박정희), 탄핵(박근혜)으로 중도 하차했다. 임기를 마친 6명 중 둘(전두환 노태우)은 임기 후 내란ㆍ반란죄 등으로 실형을 살았고,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은 되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해내기도 어렵고 위험한(?) 자리인 듯하다.
이승만은 4.19로 하야하기 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탄핵 당한 이력도 있다. 1919년 9월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그는 21년 독단적으로 국제연맹에 한반도 위임통치를 청원, 1925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탄핵 당했다. 대통령 선출 전, 총리제 하의 임시정부 총리로서 외교무대에서 자신을 ‘대통령(president)’으로 소개하며 말썽을 빚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주로 미국에 머물며 독자 외교노선을 걷던 그는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된 나머지 21년의 청원을 대통령 자격으로 행했고, 의정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철회를 거부했다. 당시 신채호는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것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한 역적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탄핵서는 “이승만은 외교를 빙자하고 직무지를 떠나 5년 동안 원양일우에 편재해서 난국수습과 대업진행에 하등 성의를 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허무한 사실을 제조 간포해서 정부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민심을 분산시킨 것은 물론…”으로 시작된다. 그는 60년 4월의 하야로 두 차례 대통령 직에서 불명예 퇴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윤보선과 최규하는 각각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의 위세에 밀려 사실상 강압에 의해 대통령직을 내놓았다.
우연이지만 1962년 윤보선의 하야도 이승만이 탄핵된 날과 같은 3월 23일이었다. 윤보선은 5ㆍ16 군사쿠데타 직후인 61년 5월 19일 방송을 통해 하야 선언을 했다가 국제법상 새 정부 승인 문제 등이 복잡해질 것을 우려한 군부의 사임 재고 요청(사실상의 압박)으로 다음 날 하야를 번복하기도 했다.
3월 10일의 헌재 판결로 직에서 파면 당한 박근혜는 아버지에 이어 2대에 걸쳐 중도하차한 대통령이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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