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박근혜’ 검찰 출두
“국민 여러분께 송구…
조사 성실히 임하겠다”
파면 11일만에 단 두마디
檢, 14개 혐의 심야까지 추궁
21시간 조사 아침 7시 귀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될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결국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 지난해 11월 이후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거듭된 대면조사 요청에도 불응했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현직 대통령’이라는 보호막을 잃자 검찰의 출석 요구를 더 이상 거부하지 못했다.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였던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가 지난해 10월 31일 검찰에 소환된 지 141일 만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취임했던 박 전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파면’ 불명예를 쓴 데 이어 이제는 형사처벌의 벼랑에 내몰렸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를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지검장)는 이날 오전 9시30분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박 전 대통령은 21시간이상 조사를 마친 뒤 이튿날 아침 7시쯤 귀가했다.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비리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노태우 전두환(이상 1995년), 고 노무현(2009년) 전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검찰 조사에 앞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박 전 대통령은 검찰청사에 도착한 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짧은 말만 남기고 조사실로 향했다. 8초짜리 메시지다.
이로써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등 14개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간 석연치 않은 핑계를 대면서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 요청을 수 차례 거부해 왔던 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필요한 절차는 이날 ‘피의자 조사’와 함께 대부분 마무리됐다. 지금까지의 버티기 전략이 무색할 만큼, 이날 오전 9시15분 서울 삼성동 사저를 출발한 박 전 대통령이 서초동 검찰청사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8분에 불과했다.
검찰 안팎에선 박 전 대통령이 종전 태도를 바꿔 이날 검찰 소환에 순순히 응한 것과 관련,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하면서 법치 무시의 한 사례로써 ‘조사 불응’을 질타했던 게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헌재는 “대국민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피청구인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국가적 혼란을 불러온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을 지기보단, 현직 대통령 신분을 무기 삼아 애초부터 검찰에서든 특검에서든 대면조사를 받는 상황 자체를 모면하려 했던 게 그의 진짜 속내였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이날 진술을 검토한 뒤 이른 시일 내 사전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정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은 조사에 집중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으나, 내부적으로는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신병처리 문제가 남아 있어 이것으로 끝은 아니지만, 국정 최고책임자에서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뀐 지 11일 만에 검찰에 불려 나온 2017년 3월 21일은 아마도 그의 생애에서 가장 긴 하루로 기록될 것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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