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세상에 젖과 꿀이 흐르고 모든 이가 쉽게 짝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지겨워서 목을 매달 것이다.” 사람답게 살려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21세기 가상 인물 ‘쇼핑하우어’는 이렇게 말할 법하다. “세상에 세일과 특가가 흐르고 모든 이가 싸고 좋은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면, 목을 매달 일은 없겠지만 생의 커다란 즐거움 하나가 사라질 것이다.”
발품 파는 발바닥의 통증만 감수하면 사고(Buy) 사는(Live)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 남대문시장이다.
남대문시장, 거대한 보물상자
외국인 관광객 아니면 노인들이나 가는 곳, 중국산 싸구려 물건이 전부인 곳, 시들시들 수명이 다해 가는 곳. 남대문시장이 고작 그런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남대문시장은 억울하다.
603년 역사의 남대문시장은 쇼핑 천국이자, 초대형 보물상자이자, 전통 시장 버전의 ‘다이소’다. “없는 물건을 찾는 게 차라리 더 쉽다” “핵무기와 고양이 뿔 빼고는 다 있다” “남대문시장에서 구한 부품으로 탱크도 조립할 수 있다” 남대문시장의 수식어는 2017년에도 유효하다. 면적 약 100만㎡(30만평), 점포 1만2,000여곳, 하루 반입 물동량 1,800톤, 거래 물품 약 2,000종, 하루 방문자 30만~40만명, 종사자 5만명. 남대문시장의 어마어마한 규모다.
크기가 전부는 아니다. 남대문시장의 진짜 매력은 대형 마트나 인터넷 쇼핑몰보다 싼 가격이다. 상인들이 상품을 직접 만들어 팔거나 유통 단계를 확 줄이고, 어둠의 경로로 물건을 들여오기도 하는 덕분이다. 믿을 수 없다고? 김도엽ㆍ이진우 한국일보 인턴기자가 20일 가격 검증에 나섰다. 1993년생 동갑 대학생인 둘의 생애 첫 남대문시장 방문이다.
멕시코 데킬라 ‘호세 쿠에르보’ 2만원(마트 가격 약 3만원), ‘칼리타’ 원두커피 드립퍼 1만원(인터넷 가격 1만5,000~2만원), 일제 동전 파스 8,000원(배송료 제외 직구 가격 9,900원), 독일제 유리 물병 1만1,000원(백화점 가격 2만5,000원), 탁상용 가습기 1만8,000원(인터넷 최저가 2만8,000원), 드라이 플라워 한 단 3,000원(시중가 1만원). 아동용 겨울 코트(1만9,000원)와 스카프(두 장에 3,000원), 도금 처리된 팔찌와 반지(각 4,000원)는 가격 비교 자체가 무의미했다. 두 인턴기자는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놀라고 또 놀랐다”고 했다. 수입상가의 한 상인은 “우리가 마진을 별로 안 남겨서 그렇다. 물건 하나 팔아야 500원 남는다”고 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먹는 즐거움은 남대문시장의 백미.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왕만두(5개 3,500원), 녹두빈대떡(큰 것 한 장 6,000원), 야채 호떡(1,000원), 과일 꼬치(1,000원), 믹스 커피(500원) 등 주전부리로 두 사람이 배를 채울 수 있다. 평양냉면, 칼국수, 꼬리곰탕, 갈치조림 등 수십 년 된 노포의 음식은 남대문시장의 시그니처 메뉴다. 칼국수 골목과 갈치조림 골목은 아예 따로 있다.
초보자를 위한 남대문시장 사용법
미니멀 라이프가 대 유행이라지만, 쇼핑의 기쁨을 어찌 포기하리오. 남대문시장 마니아와 상인들에게 ‘물건 잘 사는 법’과 ‘바가지 쓰지 않는 법’을 들어 봤다.
①발품, 또 발품이 생명이다! 싸다고 덥석 사지 말고 여러 상점의 가격을 비교하라. 김 인턴기자는 “신기하게도 다닐수록 가격이 내려갔다”고 했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시장 곳곳을 사진 찍으며 다니는 게 요령.
②“싸게 주겠다”는 상인 말만 믿는 건 위험하다. “곧 가게를 접는다면서 도자기 접시를 70% 할인해 만 원에 준다기에 신나서 샀다. 대형 마트에서 5,000원에 팔고 있더라.” 한 지인의 속 쓰린 경험담이다.
③“현금으로 하면요?” “만 원에 몇 개예요?”는 에누리를 부르는 마법의 문장이다. 만원에 1,000원 정도는 기본으로 깎아 준다. 현금을 준비하라.
④시장도 세일을 한다. 특히 계절과 유행이 생명인 의류를 파격가에 살 수 있다. “세일하는 아이 옷을 사면 본전 생각이 나지 않아 사이즈를 딱 맞게 입힐 수 있어 좋다”는 아동복매장 단골 고객의 조언.
⑤제일 붐비는 낮 12~2시, 상당수 상점이 도매상으로 바뀌는 오후 5, 6시 이후의 방문은 추천하지 않는다. 일요일마다 쉬는 상점들도 많다.
⑥초보자는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시작하라. “비행기 값 뽑았네!” 해외 여행에서 잔뜩 사 온 물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하는 말이 무색해지는 곳이다. 배송 비용과 시간, 배송 사고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직구보다 유리하다.
⑦‘시장 물건’이라고 얕보지 말라. 남대문 총판들은 백화점에도 물건을 댄다. 구제 물건 상점을 잘 뒤지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⑧아이쇼핑을 하면서 자주 쏘다니자. 일제 세안제 ‘퍼펙트 휩’을 인턴기자들은 6,000원에 샀다. 남대문시장 구력 10년째인 기자는 5,000원에 샀다.
글=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사진=왕태석 기자 김도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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