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 경영 비리 첫 재판
총수 일가 피고인 5명 나란히
신격호 측 “경영 일선서 물러나”
차남 겨냥 형사책임 떠넘기기
신동빈 측 “아버지가 직접
서미경 모녀 챙겨라 지시” 맞서
그룹 차원의 2,000억원대 경영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롯데그룹 총수 일가 대상 형사재판이 처음 열렸다. 지난해 검찰이 그룹을 상대로 전방위 압수수색을 펼친 끝에 총수 일가를 일괄 기소한 지 5개월 만에 열린 첫 공판이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김상동) 심리로 열린 롯데그룹 횡령ㆍ배임ㆍ탈세 혐의 1차 공판에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비롯해 신동빈(62)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63)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75) 롯데재단 이사장, 신 총괄회장의 사실혼 배우자인 서미경(58)씨 등이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총수 일가가 법정에 총출동하는 이례적인 풍경에, 형사 중법정 312호로 통하는 법원 청사 출입구 앞은 ‘롯데맨’들과 방청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 법정은 치매 증상을 보인 신 총괄회장이 일본어로 고성을 지르면서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회색 담요를 덮은 채 휠체어를 타고 15분 남짓 늦게 법정에 나타난 신 총괄회장은 법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재판부를 향해 “니 누고” “와 이라노”라는 말을 반복했다. 재판을 그대로 진행하자 신 총괄회장은 허공에 대고 일본어로 “롯데는 100% 내 회산데 누가 기소했냐, 책임자 불러와라”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고성이 20여분 동안 계속되자 재판부는 정상적인 재판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 결국 신 총괄회장을 퇴정시켰다. 지팡이를 내던지며 횡설수설하는 신 총괄회장의 모습을 보며 피고인석의 신 회장과 신 이사장, 서씨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가족 간 날 선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시작됐다. 신 총괄회장 변호인은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를 근거로 “구체적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랜 피고인에게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시 사항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책본부의 구체적인 판단과 업무 집행 과정에서 계열사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 일선에서 정책본부를 총괄한 아들 신 회장을 사실상 겨냥한 얘기다.
신 회장 측은 적극 반박에 나섰다. 신 회장 변호인은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에게도 월급 통장을 주지 않고 급여만 지급했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명색이 회장인데 월급 통장도 주지 않을 정도로 부자 관계가 그렇다(폐쇄적이었다)”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과 서씨 모녀에게 부당 급여를 지급하고 서씨 모녀와 신 이사장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독점 운영권을 넘겨 줄 때도 신 회장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신 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이 수도권은 미경이네, 지방은 유미네 주라고 직접 지시했고 자필로 메모지에 주주 명단을 하나씩 정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복잡한 가계도까지 슬라이드에 띄우며 신 총괄회장이 가족들의 이권을 손수 챙겼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그룹 수사팀은 지난해 6월 대대적인 그룹 압수수색과 380여명에 달하는 참고인 소환 조사 끝에 신 총괄회장 등 일가 5명에게 2,791억원에 달하는 경영비리 혐의를 적용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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