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선 부산대 명예교수
자신의 논문과 고지도 등
발송 작업 고돼 몸져눕기도
“독도가 자기(일본) 땅이라고 배우고 자란 세대의 미래가 어떨지 걱정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학자인 이병선(90) 부산대 명예교수는 지난 10일까지 보름간 일본 유력 정치인과 정부 고위관료 500명에게 독도 관련 문서를 보냈다. 문서는 자신의 논문인 ‘독도(일본명 죽도)의 영유권 문제’와 편지, 독도 고지도 등이다. 46쪽짜리 논문에 편지와 고지도를 일일이 끼워 넣고, 서류봉투에 담아 우체국에 보낸 작업이 고돼 이틀간 몸져눕기도 했다.
이 교수는 최근 ‘일본의 초ㆍ중학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안’ 고시를 우려하고 있다. 독도를 일본 고유영토라고 가르치는 것을 의무화한 데 대해 이 교수는 “지금은 외교적 사안에 머물러 있지만 후대에 극단적인 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활동은 무의미한 분쟁을 막고 왜곡된 한일관계를 바로잡는 일이다.
이 교수가 독도 문서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그는 1970년부터 22년간 부산대 사범대에서 국어교육학을 가르친 뒤 1992년 퇴직했지만 한일 지명연구는 계속했다. 그는 “일본이 독도영유권 문제를 제기해 그 때부터 일본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나 내각이 교체될 때마다 독도 문서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낸 문서는 최근 500부를 더해 5,500부에 달한다.
일본이 1년에 2차례 출판하는 정관계 인사를 막라한 책 ‘정관요람’(政官要覽)과 개인적으로 확보한 명단을 통해 정관계, 학자, 언론사 등에 보내왔다.
1927년 출생한 이 교수에게 한일 관계를 바로잡는 일은 소명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등교 첫날 칠판에 붙은 지도를 잊을 수가 없다”며 “일본과 한국은 붉게 칠하고 중국은 노란색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나중에 진주사범학교에 진학했더니 일본인 교사가 한국에는 과거 임나(任那)가 있었고, 일본이 임나땅을 되찾은 것뿐이니 독립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식민사관을 가르쳤다”며 “뒤늦게 역사를 조작해서 가르쳤다는 사실을 알고 지명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인 교사가 말한 임나에 대해 이 교수는 “일본의 사서인 ‘일본서기’에 나온 자신들만의 주장으로 일본왕정이 삼국시기에 가야를 거점으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것처럼 날조한 것”이라며 “임나는 대마도에 있던 마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임나국과 대마도(1987)’와 ‘일본고대지명연구(1996)’를 썼고, 이를 일본어로 번역해 1989~2000년까지 총 2,800권 가량을 일본 주요 도서관에 보내기도 했다.
이 교수의 독도 문서와 책 보내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내년에 독도 문서 500부를 추가로 보낼 계획이다. 이 교수는 “19세에 맞은 광복을 기억하고 있다”며 “마을사람들이 전부 다 꽹과리를 치며 며칠을 온 동네, 장터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나라가 바로 서려면 국력을 키워야 한다”며 “그러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올곧은 정신을 갖는 일,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다”고 조언했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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