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끝으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첫 아시아 순방이 마무리됐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밑그림이 완성 단계에 접어든 상황이란 점에서 순방이 무게감을 가졌다. 그러나 기대했던 ‘새 대북 접근법’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고 중국의 ‘대북 역할론’을 강조하는 메시지 전달에 그쳤다. 결국 다음달 미중 정상회담을 토대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할 전망이다.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회담에서 ‘대화무용론’ ‘군사대응을 포함한 강경한 대북압박’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예상했던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당사국들과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과 달리 대북정책의 기조는 이미 완성됐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압박에 대한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중국의 태도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틸러슨 장관과의 회담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핵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의 충돌”이라고 했다. “핵무기 포기 전까지 대화는 없다”고 한 틸러슨의 발언과 정면 배치되는 데다 한반도 위기의 책임을 북미 간 적대시 정책으로 몰아가 ‘중국 역할론’을 우회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라는 외교적 수사를 성과로 내세운 것으로 보아 북핵 해법 간극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사실상 중국을 표적으로 한 세컨더리 보이콧 발동을 강행한다면 북핵 위기는 미중 간 정면충돌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북한도 예상대로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의 망동은 난폭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역시 대화를 거부한 미국의 대북 강경책은 “올바른 대안이 아니다”고 했다.
미중의 북핵 갈등이 고조되고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맞대응한다면 한반도 상황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자리잡기도 전에 파멸적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198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국방예산을 증액해 사실상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주변국의 우려를 사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집권이 유력시되는 우리 야권과 미국 정부와의 현격한 대북 견해 차이가 걱정스럽다. 미중 사이의 어정쩡한 양비론으로는 우리 외교를 지켜내기 어렵다. 북핵 외교의 동력이 견고한 한미관계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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