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장관이 17일 회담을 가졌지만 이례적으로 만찬을 하지 않고 끝나면서 온갖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이 같은 의사소통 과정의 혼선은 탄핵 정국에서 우왕좌왕하는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렉스 틸러슨 장관이 17일 회담을 마치고 서울에서 1박을 지내는 상황에서 주최측인 우리 정부가 만찬을 준비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미국과의 스킨십을 넓히는 좋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외교적 관례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틸러슨 장관이 우리 정부로부터 만찬 요청을 받지 못했다고 한 것은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달리 보면 이는 한미간 소통 라인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미 정부 내에서 한반도 라인이 여전히 불투명하다. 외교ㆍ국방장관 인선은 마쳤지만, 한반도 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동아태차관보는 공석이다. 더군다나 주한미국 대사도 아직 없는 상태다. 회담을 앞두고 만찬 참석 등 세부적인 사항을 두고 실무 단위에서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이지만, 고위급 채널이 없다 보니 틸러슨 장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19일 “틸러슨 장관의 첫 방한이 갖는 중요성과 한반도 정세의 엄중함을 감안해 긴밀하게 일정을 조율했다”며 곤혹스러운 입장을 에둘러 드러냈다.
틸러슨 장관이 엑손 모빌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기업인 출신이어서 외교가의 행동패턴에 둔감하거나 소홀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미 정부 내에서 한국과의 관계가 세부적인 부분까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틸러슨 장관은 한국 방문 전후로 일본과 중국을 찾았는데, 회담 후에는 예외 없이 만찬을 가졌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정부 들어 한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인식이다. 틸러슨 장관은 일본을 향해 동맹(ally)이라고 칭한 반면, 한국은 파트너로 규정하는데 그쳤다. 이번 아시아 순방의 초점이 내달 초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의 의제 조율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두 표현의 어감은 현격하게 다르다.
이처럼 온갖 뒷말이 나오는데도 외교부는 “만찬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적절한 기회에 설명하겠다”며 어떻게든 회담의 성과를 부풀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오만한 태도를 뒤늦게 감싸는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