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 발표 前 행사축소 지시 논란
임 차장 “그런 적 없다” 줄곧 부인
조사결과 기다리자는 분위기 속
“대법원장 눈치보는 행정처
이참에 문제 짚어야” 목소리도
사법개혁 논의 축소 지시 의혹을 받았던 임종헌(58ㆍ사법연수원 16기) 법원행정처 차장이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전국의 판사들은 내홍 확대를 우려하면서 사태 전개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임 차장은 이날 법관 재임용 신청을 철회함에 따라 임관 30년을 맞는 이달 19일 법원을 떠나게 된다. 판사는 10년마다 재임용절차를 밟으며, 특별한 하자가 없는 이상 연임이 된다. 임 차장은 전국 법관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재임용을 앞둔 시점에서 더 이상 지위를 보전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하게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고 재임용 신청 철회 이유를 밝혔다.
앞서 임 차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관 인사제도 개선 등 사법개혁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이달 25일 발표하려 하자, 지난달 정기인사에서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난 이탄희 판사에게 연구회 행사 축소를 지시한 의혹을 받았다. 임 차장은 줄곧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정작 당사자인 이 판사는 지난 2월 20일 부임도 전에 파견 발령 철회를 요구해 원 소속인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돌아간 뒤 이와 관련해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일선 판사들의 문제제기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대법관 출신 이인복(61ㆍ11기)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에게 조사 권한을 넘긴 상태다. 임 차장도 “퇴직과 무관하게 이번 일과 관련한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고, 결과를 수용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사를 통해 사태의 전말이 드러날 때까지는 사법부 내 갈등이 표출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판사 일부는 사법부내 ‘보혁 갈등’으로 보는 일각의 시선을 과잉 해석으로 불편해하면서 조기 수습을 바라는 눈치다. 서울 지역 한 판사는 “부당 지시를 받았다는 판사가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상황에서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며 “당사자가 조사위에 밝혔을 내용 확인이 우선”이라 말했다.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논란을 초래한 법원행정처의 문제도 이번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2인자(임 차장)의 사의 표명은 안타깝지만 적당히 덮을 일은 아니다”며 “행정처 주요 보직 인사들이 부당하게 각종 간섭을 하는 정황들이 그동안 있었다”고 말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대법원이 금기시하는 ‘사법행정’과 ‘인사권’ 연구 등으로 대법원장 권한을 문제삼고 반기를 드는 모임으로 ‘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판사는 “난민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구도 많은데, 책 발간 예산 지원까지 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제기와 관련해 행정처 출신의 전직 부장판사는 “행정처 안에선 대법원장의 의중을 너무 신경쓰면서 ‘절대 마찰 빚을 일은 말자’ ‘언론에 관심 끌 일은 말자’는 인식이 짙다”며 “이번 일도 이와 크게 무관치는 않을 듯하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부장판사는 “중앙집권적인 일본식 사법제도를 차용한 우리 체계에선, 어느 대법원장이 되건 그 의중에 따라 행정처가 굴러갈 수밖에 없다. 달리 대안도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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