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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부패 알지만, 대안 없어 희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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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부패 알지만, 대안 없어 희망도 없다”

입력
2017.03.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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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의 공화국 광장에서 시민들이 민족주의 무장단체 ‘신아르메니아 공공구국전선’ 지지와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예레반=AP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의 공화국 광장에서 시민들이 민족주의 무장단체 ‘신아르메니아 공공구국전선’ 지지와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예레반=AP 연합뉴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캅카스 산맥 남쪽의 산간 소국 아르메니아가 4월 2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제에서 총리 권한을 대폭 강화한 내각제(이원집정부제)로 개헌(2015년)한 뒤 맞는 첫 총선이다. 관권선거ㆍ부정선거 논란으로 얼룩졌던 대통령제를 안정적인 권력 이양이 가능한 완전한 내각제로 바꾸려는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과 집권 공화당(RPA)의 복안은 외형상 성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은 정치적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황이다.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특히 지난해 남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싼 라이벌 아제르바이잔과의 4일 전쟁 참패는 수용하기 어려운 상처였다. 공화당 정권은 재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이들의 민심을 어루만져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총인구 310만명, 바다와 접해 있지 않은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는, 이슬람 국가인 터키(서쪽), 아제르바이잔(동쪽)과 분쟁을 거듭하고 있다. 오랫동안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 말~20세기 초 아르메니아인 집단 학살 사건으로 터키와는 앙금이 깊은 상태다. 아제르바이잔과는 아르메니아인이 다수 거주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 공화국 영유권을 놓고 여러 차례 무력 충돌이 있었다.

국경도 어지럽고 경제적으로도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는 가운데, 정국은 구 소련 시절 고위 관료와 국영기업을 물려받은 ‘올리가르히’ 기업인의 연합체인 중도 보수 성향 정당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다. 공화당은 20% 정도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 관영 통신사와 보수언론, 기업인들이 정권을 지지하고 있으며 공화당은 자신들만이 현실적으로 아르메니아라는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반면 야권은 군소정당으로 쪼개져 있다. 유서 깊은 진보 성향 정당 아르메니아혁명연합(ARFㆍ다슈나크), 초대 대통령 레본 테르페트로샨이 주도하는 아르메니아국민회의(ANC), 공화당 정권에서 떨어져 나온 전직 장관들이 이끄는 ORO연합, 친서방 성향의 젊은 정치인들이 이끄는 ‘옐크(밖으로)’ 연합 등이 각기 ‘반 공화당’ 기치를 걸고 있다.

하지만 올리가르히 출신 가직 사루키얀이 이끄는 번영 아르메니아당(PAP)과 군소정당 연합인 ‘사루키얀 연합’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상태다. 2004년 사루키얀이 창당한 PAP는 2013년 대선 전까지 공화당 정부와 연합했다가 반정부 여론이 높아지자 야권연대에 가담한 대중주의 중도 정당이다. 사루키얀은 2015년 한때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은퇴했다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복귀해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3월 9일 샨트TV가 전러시아여론조사센터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 선두권은 사루키얀 연합(26%)과 공화당(19%)이 다투고 있다. 나머지 정당들은 대부분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최소득표율(단일정당 5%, 정당연합 7%)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눈여겨 봐야하는 대목은 아르메니아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이다. 전체 응답자 51%가 “아르메니아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아르메니아 상황은 변할 것이 없다”는 응답까지 합치면 84%가 희망을 잃은 채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응답자 3분의 1은 아직도 지지정당을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는 사르키샨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2013년 이래 여름마다 반정부 집회가 열렸다. 2013년에는 대중교통요금 인상, 2014년에는 연금개혁, 2015년에는 전기요금 인상이 계기였다. 공통된 목소리는 부패한 정부를 개혁하라는 것이었다. 공화당 정권이 내각제로 개헌을 결심한 이유도 계속되는 반정부 집회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다만 지난해 집회는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7월 17일,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 무장단체인 ‘신아르메니아 공공구국전선’ 소속 대원 수십명이 예레반 에레부니구 경찰서를 점거하고 사르키샨 대통령의 사퇴와 자신들의 지도자 지라이르 세필얀의 석방을 요구했다. 세필얀과 그가 이끄는 공공구국전선의 주축은 1988~1994년 아제르바이잔(소비에트 공화국)과 벌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참전용사다. 이들은 부정부패를 이유로 제도권 정치에 참여를 거부하고 ‘시민불복종’ 노선 운동을 펼치고 있다.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9명을 인질로 잡은 ‘테러’였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온정적이었다. 오히려 이들을 지지하는 집회에 2만여명이 참석했다. 한 참가자는 일간 가디언에 “정부가 이들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했지만 이들은 이런 상황에 몰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공공구국전선 지지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 시민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제도권 야당들도 “폭력에는 반대하지만, 정부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이들을 옹호했다. 2주 간의 점거는 오히려 시위가 격화되자 부담을 느낀 무장대원들이 자진 항복하면서 끝났다.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는 현 정부가 카라바흐 지방의 전략적 중요성을 평가절하하고 유화적 태도를 보인 것이 참전용사들의 자존심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전용사들은 지역 강국 아제르바이잔에 맞서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기에, 대중에도 영향력이 크다.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군이 아제르바이잔과의 충돌에서 1980년대 무기를 사용하고 제대로 된 전투 준비도 못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 부패가 안보에까지 위협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대표적인 친 러시아 국가이지만,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군에 현대식 장비를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중적 태도에 대한 반(反)러시아 감정도 고개를 들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을 견제하기 위해 북서부 규므리에 러시아 육군 주둔을 허용하고 있다. 공화당은 친 러시아 노선을 더욱 강화해 2016년에는 연합사령부 설치까지 합의했다. 국가안보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친러시아 노선을 정치적으로 독점해 왔던 공화당 정권은 이번 선거에서 오히려 부담을 안게 됐다.

야당의 견제를 받고 있지만 공화당 정부가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사르키샨 대통령이 2016년 9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임명한 카렌 카라페티안 신임 총리가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약속하는 등 공화당 이미지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라바흐 충돌과 뒤이은 반정부세력의 시위는 공화당 정권이 내세운 안보 우선의 신화를 훼손시켰고,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민족국가를 지키기 위한 바람직한 길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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