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착하자마자 판문점行
‘도끼 만행’ 희생 부대 찾아 격려
黃대행ㆍ尹외교와 잇단 회동
“만찬 거절엔 탄핵 상황 고려” 분석
17일 한국을 찾은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일정은 이례적 상황의 연속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남북 군사 대치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로 달려갔지만 특별한 대북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회담에 앞서 공동기자회견부터 열리고 회담 뒤에는 공식 만찬도 생략됐다. 과거 미국 행정부의 최고위급 인사의 방한과 비교해 상당히 소극적이었던 행보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온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틸러슨 장관은 이날 오전 10시 10분쯤 도쿄발 전용기로 경기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직후 블랙호크(UH-60) 헬기를 타고 곧바로 DMZ로 출발했다. 소규모 취재진과 함께 DMZ에 도착한 틸러슨 장관은 먼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인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했다. 캠프 보니파스는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의 '도끼 만행사건'으로 미군 두 명이 숨진 부대다. 당시 JSA의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두고 남북이 갈등을 빚던 중 북한 군 50~60명에게 미 2사단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버렛 중위가 도끼로 살해당한 곳으로 한미 연합군에게 의미가 상당한 장소다.
틸러슨 장관은 첫 일정으로 DMZ로 달려와 북한 도발의 상징적인 장소를 둘러보면서도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임호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함께 판문점 구역내 군사분계선(MDL) 바로 앞에서 일행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에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며 관련 설명을 경청하기도 했지만 반응에는 극도로 신중한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말을 아끼던 그는 추후 외교장관 회담 때 DMZ를 거론하며 “한국 사람들이 매일매일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협과 유사한 위기에 시달리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외교부 관계자가 전했다.
DMZ에서 서울로 돌아온 틸러슨 장관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예방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양자회담을 가졌다. 회담에 배석한 당국자는 “장관급 회담에서 이렇게 자세한 사안을 다루냐 할 정도로 각 이슈마다 구체적인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공동기자회견이 회담 뒤에 열려야 함에도 회담에 앞서 15분간 진행된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대목이다. 회담에서 의견 충돌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순서를 바꾼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회담이 끝난 후에는 공식 만찬도 없었다. 정부는 앞서 틸러슨 장관 방한을 앞두고 일정을 조율하면서 외교장관 회담 후 만찬을 추진했으나 미국 측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들어 거절했다. 한국에 오기 직전인 16일 일본에서 외무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접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만찬 일정을 차례로 소화한 것과는 대조적인 차이를 보였다. 일본과 달리 양국 외교 장관 간에 비공식 스킨십을 만들 수 있는 만찬 일정을 생략한 것을 두고는 한국이 동맹 외교에서 뒤쳐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2개월 후면 정부가 교체되는 한국의 탄핵 상황을 고려해서 현 정부 외교라인과 거리를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틸러슨 장관은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만찬 대신 주한미군 관계자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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