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전용기 공간이 협소해 수행 기자단과 동행할 수 없다고 했는데, 결정이 여전히 유효합니까? 그렇다면 한 매체에 좌석을 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5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 언론브리핑장. 45분 동안 진행된 브리핑 내내 마크 토너 국무부 대변인 대행은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날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한중일 첫 순방(15~19일) 앞두고 방문 목적과 의제 등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북핵 위협, 무역불균형,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등 당면한 동북아 현안을 둘러싸고 심층적인 질의ㆍ응답이 오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질문은 엉뚱하게도 오직 한 가지, 틸러슨 장관이 수행 기자단을 배제하고 ‘나홀로’ 순방을 강행한 이유에 모아졌다.
토너 대행은 전용기 기종을 설명하며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공간이 부족해 기자단을 수용할 수 없다” “스태프 인원이 적다” 등의 이유를 댔다. 그래도 질문이 쏟아지자 “난 이번 결정에 관여하지 않아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국무부 기자단이 분노한 것은 이번 순방에 취재진을 아무도 데려가지 않겠다는 애초 국무부 통보와 달리 기자 한 명이 동승하기로 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틸러슨이 택한 언론은 이름도 생소한 보수성향 온라인 매체 ‘인디펜던트 저널 리뷰(IJR)’. 누가 봐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 전달하겠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실제 2012년 창간한 IJR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가까운 공화당주지사협회에서 책임자로 일했던 필 무서가 공동 소유주다. 주로 젊은 보수층을 겨냥해 정치인들의 뒷얘기 영상을 제공하는 등 정통 언론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 왔다. 틸러슨과 동행한 에린 맥파이크 기자 역시 IJR에 입사한 지 몇 주밖에 안 된 신참으로 심지어 국무부 출입 경험조차 없다.
미 언론은 주류 매체를 적으로 돌린 트럼프를 대신해 틸러슨이 총대를 멘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국무부는 대규모 예산 삭감이 예정된 만큼 ‘비용 절감’을 이유로 둘러대고 있으나 그보다는 유력지를 ‘국민의 적’으로 규정한 상관 트럼프의 왜곡된 언론관을 틸러슨이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방문지인 중국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있다. 정부 통제가 강한 중국 매체들은 요즘 정부에 불리한 보도가 나올 때면 트럼프가 언급한 ‘가짜뉴스(fake news)’란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MSNBC의 안드레아 미첼 기자는 “국무부는 세계에 언론 자유를 전파하는 상징이었으나 이제 베이징에 언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동질감을 각인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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