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국공관 전 직원 최은주씨
외교공무원과 분쟁을 책으로 펴내
한국 조직문화 민낯 등 고발
“갑질에는 을질로 맞서야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그렇지 싶다가도 낯이 화끈댄다. 최근 출간된 ‘프랑스에서는 모두 불법입니다’(갈라파고스)는 한국 외교 공무원들의 민낯을 통해 지질한 한국의 조직문화를 폭로하는 최은주(43)씨의 고발장이다.
최씨는 프랑스 유학 중 200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대표부에서 ‘행정원’으로 일하게 됐다. 2011년 사소한 시비로 시작된 폭행 사건이 있었고, 이 때문에 소송이 벌어졌다. 폭언ㆍ폭행 사태에 대한 최씨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대표부 직원들은 참지 못 했다. 그로 인해 최씨는 2012년 1월 해고당했고, 2012년 10월엔 부당해고에 대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한국대표부는 ‘외교관 면책특권’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러다 지난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덕(?)에 배상금을 받아냈다. 이 때 그간 안주고 밀쳐뒀던 밀린 임금과 상여금도 슬그머니 내놨다. 대통령 오시는데 누가 될까봐 그리 한 것이다. 본인 이외엔 가명을 썼으나, 이 과정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이 책에 담겨있다. 최씨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난방에 문제가 생겨 겨울에 좀 추웠는데 문을 자꾸 열고 다니는 분이 있어 여러 번 문을 닫아달라 요구했더니 ‘건방지다’는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며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 계기를 밝혔다.
불어 한마디 할 줄 몰라 기름 넣고, 전등 켜는 것까지 행정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대표부 직원이었지만, 그들에게 행정원이란 그냥 막 부려먹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나마 최씨는 프랑스 국적으로 프랑스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서 싸울 수 있었다. 한국대표부와 분쟁이 생겼을 때 대표부는 최씨를 잘랐지만, 프랑스노동법은 최씨를 권리를 지닌 하나의 인격체로 철저하게 보호해줬다. 최씨는 이 과정에서 한국법이 ‘갑질 보장법’이라면, 프랑스법은 ‘을질 보장법’이란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최씨는 “프랑스는 계약직이라 해도 1년 6개월이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데 한국은 7년간 나를 비정규직으로 부렸다”며 “프랑스법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자를 ‘갑’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그렇게 해줘야 노동자가 더 일할 맛이 나서 능률적으로 일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한국인 동료 직원들은 ‘뒷담화’에만 강했을 뿐, 정작 꼭 필요한 법정 진술이나 증언에서는 말하기를 거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반면 한국인 직원들처럼 ‘불이익’을 암시 받았던 프랑스 현지 직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자신들이 보고 겪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만큼은 있는 그대로 증언했다.
최씨는 “갑질에는 을질로 맞서는 게 당연한 이치”라며 “한국의 을들은 무조건 고개 숙이고 입 다물어야 한다는 게 기가 막히다”고 했다. “을이 자신의 권리 주장하는 것을 괘씸하게 여겨선 안된다.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한국도 변하려 하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등 각 조직들마다 조직문화 진단 어쩌고 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다. 최씨 생각은 어떨까. “정말 수평적 조직문화를 원한다면 상사가 부하에게 존칭 쓰는 것부터 하면 어떨까요. 불어엔 ‘너’에 해당하는 ‘Tu’와 ‘당신’에 해당하는 ‘vous’가 있어요. 상사가 부하를 부를 때 ‘Tu’라 한다면 부하도 상사를 ‘Tu’라 부릅니다. 상사가 부하를 ‘vous’라 하면 부하도 그렇게 부르고요. 상사-부하는 직무상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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