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ㆍ김명주 옮김
동녘 사이언스 발행ㆍ304쪽ㆍ1만8,000원
“남성은 일부다처 성향(씨를 퍼트리려는 욕구)을 타고난 반면 여성을 일부일처 성향(난자를 지키려는 욕구)를 타고 태어난다.“(데이비드 버스)
“남성은 성적 대상을 원하고 여성은 지위 욕구를 채워줄 대상을 원한다.”(헬렌 피셔)
혹시 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거리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명제에 걸맞게 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노력을 잠시 멈추고 이 책을 펼쳐보자. ‘남성은 이러한 것을 원하고 여성은 저러한 것을 원한다’는 식으로 귀결되는 ‘젠더 프로파일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줄 것이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모든 것을 생물학적 관점으로 풀어내려는 진화심리학이 그동안 성 고정관념을 공고히 만들어 온 점을 비판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여성, 젠더, 섹슈얼리티 연구 프로그램의 부소장을 지내고 현재는 캐나다 토론토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마리 루티가 썼다.
생물은 생활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하며, 생존경쟁에 적합한 것만 살아남는다(자연선택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발전한 진화심리학은 자연선택이 누적되면서 형성된 유전자가 인간의 심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이다. 저자는 특히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데이비드 버스 ‘욕망의 진화’ 등 진화심리학 저서들이 강화하고 있는 젠더 프로파일링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진화심리학을 실제 데이터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이론도 인용한다.
저자에 따르면 라이트나 버스의 주장은 1800년대 빅토리아 시대의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남성들은 습관처럼 성욕을 느끼지만 여성들에겐 예외적인 욕구”라는 가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라이트는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여성들에게 “신혼여행 갈 때까지 그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는 ‘에마 전략’을 제시한다. 다윈의 아내 에마 웨지우드의 이름을 따 남성들의 본성을 이용하라는 조언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생각하기에 “남성들은 타고나기를 문란하게 태어났고 여성들은 조신하게 태어났다. 여성은 남성에게 ‘사랑, 헌신, 부, 사회적 지위, 야망, 근면, 신뢰성, 안정성, 지적능력, 힘, 건강’ 등을 원하고 남성은 여성에게 ‘젊음, 아름다움, 0.7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만을 원한다.”
그러나 인간은 문화ㆍ사회ㆍ역사의 영향을 받는 동물이다. 루티는 책을 관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남녀가 다른 이유는 오로지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인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남녀는 다르기만 할 뿐인가? 인간의 성 사회화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성별에 따라 파란색 혹은 분홍색으로 방을 칠하고, 흔히 성별에 맞는다고 알려진 장난감을 준비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원한다는 ‘사랑, 헌신, 부…’와 같은 특징들을 현대사회에서는 남성 역시 여성에게 원한다.
다윈이 진화론에서 보인 통찰은 생물이 환경에 적응한다는 점이다. 환경의 일부가 된 문화적 조건이 인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듯, 성 차이는 불변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루티는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주장이 대중에 퍼지고 사회적 타당성을 얻을수록 생길 여파를 우려한다. 그는 ‘남녀는 원래 다르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우리가 성 차이에 초점을 맞출수록 우리는 성 차이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반면 성별에 관계없는 인간의 특징을 강조하면 젠더화된 사고를 허물 수 있다.”
양진하 기자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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