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신고액은 사상 최대 불구
21%만 들어와…5년 사이 최저
외국인투자센터도 개점휴업

지난해 초 중국 A기업으로부터 600만달러(약 68억원) 투자를 약속 받은 국내 B기업과 이들 사이에서 투자 중개 업무를 맡은 C은행은 요즘 속이 타 들어간다. 일정대로라면 늦어도 지난 연말까지는 투자금이 C은행으로 들어왔어야 하지만, 여전히 기약조차 없기 때문이다. 투자 지연으로 합작법인 설립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된 B기업은 최근 A기업까지 찾아 갔지만 오히려 투자금을 받지 못할 거란 불안감만 더 커졌다. A기업이 “중국 정부가 글로벌 기업에 대한 배당금 송금을 빼곤 다른 투자 목적의 해외송금은 강하게 규제하고 있어 우리도 투자금을 언제 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애매한 답을 줬기 때문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 중국의 경제 보복 수위가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최근 B기업의 사례처럼 중국 당국의 제동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로 했던 중국의 투자금이 기약 없이 막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사드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높아지기 시작한 작년 하반기부터 이 같은 사례가 급증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중국발 투자금 유입 중단으로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커지자 정부도 사태 파악에 나섰다.
15일 본보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의뢰해 지난해 중국이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 중 실제 투자(도착금액)된 액수를 확인한 결과, 도착금액은 4억3,821만달러로 1년 전(17억7,390만달러)보다 무려 75%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엔 중국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10억달러)로 도착금액이 사상 최대였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이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20억4,917만달러)은 사상 최고로 늘었지만 정작 한국으로 넘어온 투자금은 신고금액의 21%에 그쳤다. 이 비율은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중국의 냉랭해진 투자 열기는 각 시중은행이 지난해 한국에 진출하는 중국 기업 자금을 잡기 위해 앞다퉈 세운 외국인직접투자센터(FDI)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 측이 약속했던 투자금이 제때 입금되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 한 대형 시중은행 집계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이 은행에 투자금을 입금하기로 한 프로젝트 8건(500만 달러 이상) 중 7건의 입금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8건 중 7건은 제조업이고 1건은 제주도 부동산 투자 건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사드 배치 이후 중국 당국이 유독 한국 기업에 대해서만 투자금 송금을 깐깐하게 심사하고 있다는 기업들의 민원이 적지 않다”며 “하지만 대안이 없어 기업과 은행 모두 답답해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최근 수년간 유행했던 중국인들의 제주도 부동산 투자 자금을 잡기 위해 지난해부터 현지에 줄줄이 세운 FDI 센터는 요즘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중국 정부가 특히 부동산 투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제주 부동산에 대한 중국기업 투자도 완전히 꺾였다”고 말했다.
정부도 사태 파악에 나섰다. 산업부 관계자는 “통상 약속했던 투자가 실제 완료되기까지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지난해 신고금액 대비 도착금액이 급감한 데는 중국 당국의 통제가 일부 작용한 걸로 보인다”며 “아직 경제보복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사태 파악 차원에서 실제 피해 사례들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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