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까요. 자기가 간절히 소망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가 아닐까요. 신의 정원에 다채로운 빛깔의 꽃이 피는 것처럼 나는 나만의 빛깔의 삶을 살아야 행복합니다. 신의 정원에 다양한 향기의 꽃이 피는 것처럼 나는 나만의 향기를 지닌 삶을 살아야 행복합니다.
물론 내가 소망하는 삶을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강인한 의지와 열정도 있어야 하지만 나와 더불어 사는 이들의 도움과 사랑이 뒷받침되어야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런 이들을 곁님으로 두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지금은 이승에 안 계시지만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신 스승들,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바로 내 삶을 이끌어주고 밀어준 곁님들입니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내가 꿈꾸는 비전을 향해 고집스레 밀고 나아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내버려두었다고 해서 곁님들이 척 팔짱 끼고 돌아앉아 무관심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내 어머니와 아내야말로 황소고집으로 살아온 나를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지원해준 분들이지요. 평생 시인과 목회자로 자발적 가난의 삶을 선택해 살아온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그들이 ‘너 왜 그렇게 사니?’ ‘당신 그렇게 살면 안 돼요!’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타박하고 간섭했다면 오늘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곁님들의 그런 ‘내버려둠’에 대해 정말 고마워합니다. 그들의 ‘내버려둠’이야말로 나에 대한 진정한 배려요 사랑이었으니까요. 때로는 밉광스럽고 갑갑했을 텐데, 그걸 속으로 꾹꾹 누르며 지켜보고 기다려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일본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새/당신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나에게 주었다.”
나는 나를 진심으로 배려해준 곁님들의 사랑을 이 아름다운 시구처럼 ‘당신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그들은 나에게 통째로 내주었으니까요. “사랑은 쓰디쓴 것들을 달콤한 것에로 이끌어간다”(루미)는데, 곁님들의 사랑은 나를 영혼의 감미로움으로 이끌어주었지요.
돌아보면 나 역시 평생 동안 수많은 곁님들에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사람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우주의 곁님들에게도 말입니다. 태양, 별, 바람, 공기, 산, 강, 나무, 꽃, 새, 나비 등과 같은 곁님들의 알뜰살뜰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내 영혼의 정원을 다채롭게 가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온갖 곁님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차곡차곡 쌓아놓는다면 저 가을 들판의 노적가리보다도 높을 것입니다.
이제 그 사랑의 빚을 갚고자 하는데, 나도 내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그들에게 돌려주어야겠지요. 조금 철이 들어가는 걸까요. (쯧쯧…이제 다 늙어서?) 하여간 난 요즘 들어, 내가 그들에게 주어야 할 내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 뭘까 자주 궁구하곤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곁님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입니다. 그들이 내게 했던 것처럼 그들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일, 따스한 눈빛으로 묵묵히 지켜보며 아무 조건 없이 격려하는 일이겠지요. 설사 내 자식들이라 하더라도, ‘왜 그렇게 사니?’ ‘이렇게 해보면 어때?’하고 내 경험을 앞세워 그들의 삶을 어디로 끌고 가려 하거나 훼방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지원하는 일이겠지요. 어이, 꼴리는 대로 살아보라구!
이것이 내 곁에 있는 가족들만 아니라 자라나는 미래세대에 줄 수 있는 내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겠지요. 그래서 그들이 자기만의 빛깔, 자기만의 향기를 가진 우주의 한 꽃송이로 피어난다면 세상이 훨씬 더 아름다워지지 않겠습니까.
고진하 목사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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