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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통령 파면과 청탁금지법

입력
2017.03.1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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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지난 주 ‘대한민국의 첫 여성대통령’을 파면했다. 8인 재판관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탄핵 인용 결정문은 헌법수호의 준엄성과 정파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성, 판결의 명확성으로 많은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근거로 ‘청탁금지법’이 인용됐다는 점이다. 안창호 재판관은 결정문에 기재한 보충의견에서 “이 법률은 적용대상으로 공직자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을 포함하고, 공직자 등의 금품수수 행위를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는 경우에도 제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려는 국민적 열망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로 출범해 대통령의 청렴성을 준열하게 묻고 있는 청탁금지법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시행된 지 6개월밖에 안 되는 이법의 개정 논란이 그것이다. 일부 정부 경제부처와 언론매체는 벌써부터 법의 효과를 회의하며 그 부작용을 주도 면밀하게 제기한다. ‘최순실 게이트’를 들며 특권층 부패는 막지 못하면서 힘없는 서민들 규제에만 골몰한다며 법 무용론을 은근히 퍼뜨린다.

무엇보다 청탁금지법을 경기 활성화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식사·선물·경조사 가액범위인 ‘3ㆍ5ㆍ10 만원’이 그렇잖아도 어려운 외식업계와 농축업계, 화훼업계를 고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탁금지법이 서민경제를 위축시킨다는 기사나 보고서를 보면 그러한 주장이 어설픈 설문조사나 교묘히 왜곡된 통계수치에 기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설문대상을 잘못 선정하여 조사를 진행한다거나, 단순 통계치를 비교함으로써 오류를 내포한 결과를 산출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는 음식점·주점업의 일자리 얘기다. 일부 언론은 고용노동부의 ‘2016년 12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결과’를 인용해 음식점과 주점업의 종사자 수가 2015년 12월보다 3만여명이 줄었다고 보도했다. 청탁금지법이 이 업종 일자리 3만개를 ‘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 종사자 수는 지난해 1월부터 전년도 동기 대비 1만5,000여명이 감소한 뒤 9월까지 꾸준히 전년 동기 대비 1만3,000~3만2,000명의 감소했다. 오히려 지난해만 보면 법이 시행된 이후 10월 93만1,000명, 11월 93만6,000명, 12월 94만6,000명으로 증가했다.

한 정책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려면 계절적 요인과 경기변동의 효과, 그리고 다른 정책이나 사건의 영향 등을 ‘통제’하는 등의 복잡한 분석기법을 필요로 하고 일정한 기간이 경과해야 한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의 경제적 변화는 전반적 경기침체, 조류독감과 구제역에 의한 축산업 위축,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관광객 감소, 무엇보다 요동치는 탄핵 정국 등 다양한 요인들과 중첩돼 있다.

청탁금지법의 경제적 효과를 논의하는 것이 무리임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매출 감소까지 청탁금지법 탓이라고 비난하는 데서는 법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고의성마저 느껴진다. 이 법으로 일부 손해와 불편이 야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스스로의 이익과 권리가 좀 제한을 받더라도 그것이 공동체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면, 공동체의 이익에 기여하려고 노력해 마땅하다. 그것이 정의로운 시민의 행동이다.

물론 지금의 청탁금지법이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3ㆍ5ㆍ10’이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가중시킬 수 있다. 또 대학교수 등의 외부강의 규제는 ‘지식 박제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신생법에 때 이르게 메스를 함부로 들이대다가는 자칫 그 걸음을 아예 멈춰 세울 수 있다. 적어도 이 법이 시행령에서 음식물과 경조사비, 선물 등의 가액 범위와 외부강의 등의 사례금 상한액의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토록 지정한 2018년 12월 31일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헌재의 대통령 파면은 청렴에 대한 우리사회의 필요성과 기대를 다시 확인시켜 줬다. ‘청탁’ 대 ‘청렴’, 우리가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게 어떤 사회인지는 자명하다.

김혁 서울시립대 반부패시스템연구소장ㆍ행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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