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를 땄을 때 벤치가 가장 시끄러운 팀이 우리일 걸요?”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 레프트 공격수 김학민(34)과 세터 한선수(32)가 흐뭇해했다. 선수 뿐 아니라 코칭ㆍ지원스태프가 혼연일체가 돼 한 점 한 점에 일희일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심으로부터 주의도 많이 받는다. 달리 보면 그만큼 승리에, 우승에 목말라 있다는 의미다. 2010~11시즌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에 내리 4연패해 고개를 숙였다. 이후 내리 두 시즌 더 챔프전에서 무릎 꿇어 준우승만 세 번이다. 트로피 한 번 못 들고 은퇴한 장광균(36), 최부식(39)이 지금 팀의 코치다. 대한항공이 2016~17시즌 정규리그 정상에 오르며 한을 풀 기회를 잡았다. 챔프전에 직행한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한국전력의 플레이오프 승자와 25일부터 챔프전(5전3선승제)에서 격돌한다. 생애 첫 우승을 꿈꾸는 김학민과 한선수를 10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체육관에서 만났다.
이들은 ‘우승’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한 경기 한 경기에 충실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트라우마’때문일 지 모른다. 세 번의 준우승 중 가장 아쉬운 건 역시 2010~11시즌이다. 전문가 열 명 중 일곱은 대한항공이 우승할 거라 봤고 선수들도 그렇게 믿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6년 전 팔팔한 20대였던 김학민과 한선수는 어느덧 팀의 고참이 됐다. 둘은 편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가장 신경 쓴다. 후배들 밥은 자주 사주냐는 질문에 한선수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먹는다”고 웃었다. 김학민도 “우리가 나서면 후배들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다”고 거들며 “중간 급인 (곽)승석이가 잘 챙긴다. 우리는 후배들이 주눅 들지 않고 재미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정도다”고 말했다.
경험이 쌓인 만큼 기량은 완숙해졌지만 체력 저하는 어쩔 수 없다.
한선수는 “아픈 데가 많아졌다. 어디 한 군데 아픈 게 아니라 하루는 여기, 다음 날은 저기가 아프다”고 허탈해했다. 김학민이 “(한)선수는 치료를 안 받는 스타일이었는데 요즘 치료실에서 산다”고 놀렸다. 이어지는 한선수의 한숨. “어깨 수술(2014년 12월)을 받은 뒤로 영….”
김학민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별명은 ‘김라면’이다. 점프력이 높고 체공시간이 길어 공중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선수는 “학민이 형 점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공을 원래 머리 위에서 때렸는데 요즘은 가슴 쪽에서 때린다”고 반격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둘은 경기 중 별 다른 주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 한선수는 “입단하고 쭉 학민이 형과 생활했다. 늘 우승 꿈을 꿨고 지금도 마찬가지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김학민도 “가장 의지하는 후배가 선수다”고 답했다.
6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 더 있다면 둘 다 학부모가 됐다는 점이다.
김학민 아들 건훈(7) 군은 초등생이 됐고 한선수 딸 효주(4) 양은 유치원에 입학했다. 한선수는 “건훈이는 배구 꿈나무다. 보통 아이들이 떼를 쓰면 만화 동영상을 보여주는데 건훈이는 배구 동영상을 틀어주면 뚝 그쳤다”고 기특해했다. 건훈 군은 홈경기는 빠지지 않고 응원 오는데 대한항공이 지는 날이면 울음바다가 된다. 한선수는 “(효주는)치어리더 언니들 춤 따라 하는 거 좋아하고 어리고 잘생긴 (황)승빈이나 (조)재영이를 좋아한다”고 미소 지었다.
김학민과 한선수는 지난 7일 안방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하던 날, 건훈 군과 효주 양을 안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챔프전에서 이겨 한 번 더 아들, 딸 안고 사진 찍어야죠”라는 질문에 둘은 또 말을 아꼈다.
“당연하죠. 정말 그러고 싶은데…. 말이 아닌 경기로 보여 드릴께요.”
용인=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ㆍ오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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