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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틸러슨을 바라보는 두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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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틸러슨을 바라보는 두 시각

입력
2017.03.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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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지난 연말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에 앞서 적잖은 역할을 해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트럼프의 외교정책 밑그림이 그려지는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정권 당시 미국과 불편했던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키신저가 힘을 더했다는 뉴스였다. 외신들은 키신저가 트럼프에게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해주고, 대러 경제제재를 중단할 것을 건의했다고 전했다. 수개월이 지난 현재 키신저의 조언이 실제 미국 정부를 움직여 구체적으로 대러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놓고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을 풀기 위한 포석 중 하나로 친러 정책을 권했던 키신저의 제안이 조만간 빛을 발할 것이란 전망에 맞서는 이견은 많지 않다.

트럼프 정부에 고견을 아끼지 않았던 키신저 전 장관이 당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 다름아닌 렉스 틸러슨이었다. 지난해 12월 틸러슨이 트럼프의 첫 국무장관으로 낙점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17년 동안 개인적 친분을 유지할 정도로 친러 성향이 뚜렷했던 그의 전력이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키신저는 “러시아와 친해서 문제라는 말을 신경 쓰지 않는다”라며 “트럼프의 선택은 올바르다”고 평가했다.

15일부터 19일까지 일본,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하는 틸러슨 장관은 이제 키신저 전 장관이 내다본 능력을 발휘해 미국 정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무거운 임무를 마주했다. 세계는 틸러슨을 앞세운 트럼프 정부가 북 미사일, 사드, 한국의 조기대선 등으로 난마처럼 얽힌 동북아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낼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틸러슨의 한중일 방문을 지켜보는 서구언론의 시각은 차갑다. 그가 나서는 걸 꺼려하고, 정부 내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에 동맹과 공조확인 이상의 성과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틸러슨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정상회담들에 대부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그는 테리사 메이(1월 27일), 아베 신조(2월 10일), 쥐스탱 트뤼도(2월 13일), 베냐민 네타냐후(2월 15일) 총리가 트럼프와 만날 때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의 빈자리는 항상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채웠다. 능력 발휘는커녕, 경쟁자들에게 매번 트럼프의 곁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평생 배후와 그늘에서 협상과 거래를 펼쳤던 그가 때론 양지에서 쇼맨십을 보여야 하는 워싱턴 정치에 애를 먹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포린폴리시’ 등은 틸러슨이 이번 방문길에 기자들을 배제하자 “역대 최약체 국무장관이다”는 혹평도 쏟아냈다.

그러나 틸러슨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비정상적일 뿐, 능력이나 업무 스타일이 미국의 외교력을 낮춰볼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많다. 틸러슨은 트럼프를 지척에서 가로막고 있는 이너서클 일원이 아니다. 그를 대신해 스티브 배넌 백악관 전략분석가,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오래전부터 사실상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쥐락펴락 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틸러슨은 또한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상식적이며 자유분방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국무장관으로 임명된 불운한 인물이다. 트럼프가 새벽에 난데없이 멕시코 정부와 논의되지 않은 민감한 정책을 트위터로 ‘발표’하면 이를 황급히 수습해야 하는 수고도 그의 것이었다. 국무장관으로서 능력을 펼치기에 그의 발목을 묶은 족쇄가 너무나 단단하다는 얘기다.

틸러슨은 4박5일 일정의 아시아 방문에서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는 사드 배치를 포함한 트럼프 정부의 변함없는 안보공조를 확인해 주고, 동시에 내달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을 상대로는 사드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틸러슨에 대한 키신저의 판단이 옳았는지, 아니면 ‘투명망토’속에 몸을 숨긴 겁쟁이라 깎아 내린 미국언론의 지적이 맞는지는 아시아방문 이후 간단히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양홍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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