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은위’ 등에 이어
김풍 ‘찌질의 역사’도 뮤지컬로 재탄생
원작의 댓글 반응을 참조
몰입도 깊은 장면들로 재구성
다양한 장르 섞여 대중적이고
인지도 높아 흥행 기대감
인기 작가 김풍이 글을 쓰고 만화가 심윤수가 그린 웹툰 ‘찌질의 역사’가 6월 서울 대학로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2013년 11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최근 마무리된 ‘찌질의 역사’는 20대에 막 접어든 청춘들의 서툰 연애과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매회 9.9점 이상의 별점을 받을 정도였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늘고 있다. 서울예술단의 ‘신과 함께’는 2015년 초연 당시 객석점유율 98%에 달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웹툰 ‘무한동력’(2015) ‘위대한 캣츠비’(2015) ‘은밀하게 위대하게’(2016)도 뮤지컬로 공연됐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춘 작품이 많아 뮤지컬 역시 흥행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상상력에 제약이 없는 만화라는 장르가 뮤지컬로 각색하기 안성맞춤이라는 분석이다.
왜 웹툰을 뮤지컬로 옮기나
뮤지컬은 소설 또는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해 각색한 작품이 많다.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레 미제라블’과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역시 소설이나 오페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뮤지컬계에서 웹툰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재료인 셈이다.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의 박병성 편집장은 “웹툰은 진지한 내용, 코믹한 내용을 모두 다루고 사실적인 것부터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섞여 있어 뮤지컬에 걸맞는 소재를 찾기가 수월하다”고 주장했다. 웹툰과 뮤지컬이 지닌 대중성이라는 공통점도 작용하고 있다. 뮤지컬 ‘찌질의 역사’ 기획사인 에이콤의 홍지원PD도 “지난 세대 만화들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웹툰이 더 대중적이고 세련된 예술인 것처럼 뮤지컬 역시 기존 연극 작품들보다 대중에 소구하는 지점이 많다”고 말했다.
웹툰은 소설처럼 줄거리와 에피소드가 있으면서 시각적인 상상력까지 발휘되는 장르라서 뮤지컬 제작자들의 관심을 끈다. 뮤지컬 ‘찌질의 역사’ 연출을 맡은 안재승 연출가는 “웹툰은 상황에 대한 서술보다 대사를 통한 사건 전개에 집중하고 시각적 이미지가 명확히 구현돼 있다는 점 때문에 소설에 비해 뮤지컬로 만들기 편한 면이 있다”고 했다.
웹툰의 대중적인 성공에 기대 뮤지컬 흥행을 바라는 심리도 빼놓을 수 없다. 안 연출가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콘텐츠를 활용하면 흥행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며 “웹툰을 소재로 한 뮤지컬은 대중 취향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웹툰 원작이 지닌 독창성으로 뮤지컬계에서 차별화도 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특성 살려 재구성해야
그러나 길게는 100회 이상에 걸쳐 연재되는 웹툰을 2시간 안팎의 뮤지컬로 압축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안 연출가는 “뮤지컬 대본을 쓸 때 웹툰의 전체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재배열한 뒤 제한된 시간을 고려해 스토리 전개상 필수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며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효율적인 무대 전환과 장면 전개를 위한 연출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구성 과정에서 웹툰의 장점이 발휘된다. 제작진은 독자들의 댓글 반응을 참조해 공감과 몰입도가 뛰어났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서사를 새롭게 꾸린다.
‘신과 함께’는 인간의 죽음 이후 저승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 만큼 만화적 상상력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김덕희 서울예술단 기획팀장은 “‘지옥’이라는 장소를 무대에서 구현하기 위해 바닥에 LED를 사용했다”며 “다른 장르에서도 보지 못했던 시각적 상상력을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경우 영화로도 제작돼 뮤지컬만의 속성을 활용한 차별화에 중점을 뒀다.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음악을 맡았던 허수현 음악감독은 “영화에서는 등장인물 대거 등장하는 장면이 많았지만 뮤지컬은 (모든)배우가 8명뿐인 데다 웹툰의 소소한 재미를 더 드러내기 위해 인물들의 내면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내려온 인물들이 남한 주민을 만나면서 느끼는 변화, 자신의 조국을 버릴 수 없는 한계 등 내면의 고민과 심리를 표현한 넘버들이 많았던 이유다.
박병성 편집장은 “일본에서 원작 만화 팬들을 대상으로 한 재연, 미국의 월트디즈니사 정도를 제외하면 만화를 뮤지컬로 옮기는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드물다”며 “한국 웹툰이 세계적 수준인 만큼 영화나 드라마처럼 뮤지컬계에서도 웹툰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같은 무대 공연, 연극에서는?
연극계에서는 뮤지컬보다 앞서 웹툰을 무대에 올렸다.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는 2005년 초연 이후 대학로에서 10년간 공연됐다. 최근에는 드라마로도 방영됐던 ‘운빨로맨스’가 공연됐다. 그러나 10여년 동안 웹툰 원작 연극은 크게 늘지는 않았다. 원작의 힘으로 관객을 모으긴 했으나 주류 연극계의 관심을 크게 받진 못했기 때문이다. 2011년 연극 ‘삼봉이발소’를 제작했던 이규린 주다컬쳐 대표는 “예전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됐는데 이제는 관객들이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며 “정말 무대로 옮겨왔을 때 장점이 있는 콘텐츠인지 더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웹툰 원작 연극은 ‘상업극’이라는 색안경으로 인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고 평단에서 작품성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이성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일본 연극계처럼 상업극도 하나의 장르로 인정돼야 한다고 보지만 국내에선 아직 상업극의 작품성에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연계 관계자는 “인기 있는 웹툰의 저작권료가 소설이나 해외의 극본보다 비싼 탓에 제작비가 적은 연극업계에서 계속 도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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