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은 정리해고자에 수당지급, 전직프로그램 의무화
콜트악기ㆍ콜텍 정리해고 사건은 지난 해 초 고용노동부의 중재로 노사가 다시 협상을 했지만 진척이 없었다. 노조가 요구한 복직이나 해직기간 임금(1인당 5,000만~8,000만원) 지급에 대해 사측은 거부했다. 아직 일부 소송이 끝나지 않았지만, 법원이 지금까지는 정리해고의 적법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법원 판결이 사측 입장을 반영한 경우) 정부가 사업주 쪽에 양보하라고 말하면 사업주 입장에서는 압력을 받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며 “양쪽의 합의를 위해 노사간의 대화를 중재할 수는 있지만 적극적 개입은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측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판결이 이미 났고 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콜트악기 사건 2년 후 발생했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대법원에서 정리해고의 적법성이 인정됐지만 노동자들의 복귀를 위한 노사합의가 이뤄졌다. 쌍용차 사건은 해고자가 2,600여명에 이르렀고, 전쟁을 방불케 한 점거농성 강제진압,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 등으로 정치권까지 포함해 해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리해고 사건은 사회적 압박으로 풀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조선업 구조조정이 재계를 덮치고 있는 가운데 언제든 대규모 정리해고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리해고는 사회적 파장이 크고 갈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영국처럼 정부에서 정리해고 수당을 지급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유럽 선진국처럼 취업 알선이나 훈련 등을 적극적으로 맡아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실업급여 외 최대 12개월까지 임금의 80%인 ‘직업전환수당’을 받으며 재취업 훈련비용도 지원한다. 벨기에는 20명 이상 정리해고 시 해고 근로자에게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송영섭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콜트악기처럼 기업의 해외 이전과 외국계 회사들의 갑작스런 국내 철수 등으로 인한 대량 해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 국내에서 일정한 수익 이상을 얻거나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해외 자본 이전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등의 규제 장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정리해고 요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승욱 교수는 “판례를 살펴보면 해고 요건 중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현재 위기와 장래에 있을 위기까지 폭넓게 고려하고 있어 기술혁신, 사옥매각 등 경영상의 조치보다 인원부터 줄여도 된다는 생각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정리해고라는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의 비용을 근로자가 지나치게 부담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사정이 공정하게 부담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고용보호지수에서 한국의 정규직 정리해고는 1.88로 OECD 평균(2.91)보다 크게 낮았고, 정규직 일반(개인)해고는 2.29로 OECD 평균(2.04)보다 높았다. 정리해고는 쉽고, 일반해고는 어렵다는 뜻이다.
기업의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미국 기업인 뉴발란스는 운동화의 70%를 자국 내 공장에서 생산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지켜주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미국 소비자들의 충성심을 얻고 있다”며 “기업이 단순히 저렴하게 생산할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공헌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다는 관점에서 생산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콜트악기 사건 이후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콜트악기 불매운동이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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