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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의견 달라도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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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의견 달라도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

입력
2017.03.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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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직원들 2분간 기립박수

안전우려 탓인지 가족은 불참

마지막 식사 구내식당서 재판관들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337개 단어로 구성된 짧은 퇴임사에 ‘헌법’이라는 단어가 4차례, ‘헌법재판소’는 8차례 들어갔다. 헌법재판소가 지켜내고자 한 헌법 가치를 수 차례 힘줘 말하며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이제 분열과 반목을 떨쳐내고 사랑과 포용으로 서로 껴안고 화합하고 상생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 대행은 13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진행하면서 겪은 심적 노고를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우리 헌재는 바로 엊그제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절차를 진행하면서 헌법의 정신을 구현해 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지난 80여 일을 돌아봤다. “지금 겪고 있는 위기상황과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 보장이라는 헌법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며, 헌법 가치를 중대하게 위반한 박 전 대통령을 재판관들이 숙고 끝에 파면할 수밖에 없었음을 재차 확인했다.

파면 결정 이후에도 계속되는 과격 집회를 우려하며 화합도 호소했다. 이 대행은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며 폭력으로 분출되는 사회 갈등을 끝내고 서로 포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탄핵심판을 이끈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마지막 공식석상에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사저로 향하면서 마지막 책무를 저버린 사회 통합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 법치질서의 새 장이 열렸다는 자부심도 내비쳤다. 이 대행은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는 중국고전 ‘한비야’를 인용하며 “비록 오늘은 이 진통의 아픔이 클지라도, 우리는 헌법과 법치를 통해 더 성숙한 민주국가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끝을 맺었다.

오전 11시부터 15분 가량 퇴임식이 진행된 대강당은 3일 전 같은 시각, 전세계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검은색 법복을 입고 박 전 대통령 파면을 선언하던 이 대행 모습이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 되던 곳이다. 이 곳을, 이 대행은 이번엔 법복 대신 보라색 정장 차림으로 왼쪽 가슴에는 꽃을 단 채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대강당 156석을 가득 채우고 출입구까지 늘어선 ‘7인의 재판관’을 비롯한 헌재 직원들이 2분 간 기립 박수를 보내자 카메라 100여 개의 플래시가 터졌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 대행은 강단 정중앙에 걸린 태극기 앞에 바로 섰다.

이 대행은 주말에 퇴임사를 직접 썼다. 출근 후에도 원고를 다듬느라 퇴임식 직전에야 비로소 홍보 심의관실에 전달했다. 퇴임식이 끝난 뒤에는 나머지 재판관들과 구내식당에서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며 소회를 나눴다. 이 대행의 가족은 퇴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헌재 근처에 과격 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탓에 이 대행이 가족의 안전을 우려해 초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밀린 재판이 많아 오늘 밤 0시까지 임기인 이 대행이 평의와 평결에 참여한 뒤 오후 늦게 퇴근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격무에 지친 듯 오후 2시 30분 열린 환송 행사 직후 직원들과 악수를 나눈 뒤 헌재를 떠났다.

이 대행은 2011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 지명을 받고 최연소로 헌재에 입성해 취임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다른 후보들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6, 7기나 후배여서 ‘기수 파괴’인사라는 얘기도 나왔었다. 헌재에서 기수로도, 나이로도 ‘막내 재판관’이지만 근무기간 최선임이라 박한철 헌재 소장의 직무를 이어 받았다. 판사 시절 부드러운 재판 진행으로 정평이 나 있던 이 대행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탄핵심판을 강단 있게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기우에 불과했다. 지난달 22일 변론에서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가 강일원 재판관에게 ‘국회 측 수석대리인’이라고 한 발언에 “감히 이 자리에서 할 수 없는 말이다”라고 일침을 놓는가 하면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 식 질문에는 “사실관계만 물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통령 측이 무더기로 신청한 증인이 계속 법정에 나오지 않자 직권으로 증인 채택을 취소하는 결단력까지 보이는 등 긴장과 압박 속에서도 대과(大過) 없이 역사적 재판을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다. 이 대행은 퇴임 후 당분간 뚜렷한 계획 없이 가족들과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임명일 순으로 선임인 김이수 재판관에게 다음 대행을 맡겼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퇴임식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이 대행이 퇴임사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서재훈 기자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퇴임식이 열린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이 대행이 퇴임사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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