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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돔구장에 대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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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돔구장에 대한 착각

입력
2017.03.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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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가 열린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연합뉴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가 열린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연합뉴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 초. 야구가 일찍 기지개를 켰다. 고척스카이돔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약 200여명의 취재진과 야구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2006년 시작돼 4년마다 열리는 야구월드컵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최됐다. 성인야구 국가대항전의 국내 개최는 1982년 잠실 세계야구선수권 이후 35년 만의 경사다.

길게는 11월 중순부터 3월말까지 겨울이 이어지는 한국 기후 탓에 그 동안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첫 돔구장인 고척돔이 개장하면서 기온의 영향을 받지 않고 경기를 할 수 있게 됐다. 고척돔을 찾은 야구팬들은 “돔구장이 생겨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야구를 보고, 세계적인 스타들도 안방에서 보게 돼 좋다”며 반겼다.

그런데 한국을 찾은 외국 야구인들의 반응은 우리 기대와 사뭇 달랐다.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거 커미셔너는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를 치를 생각도 가지고 있지만, 이보다는 조금 더 큰 장소가 필요할 것 같다”고 2만석도 되지 않는 고척돔의 규모에 아쉬움을 보였다. 최소 4만명 이상을 수용하는 메이저리그의 7개 돔구장에 익숙해 있던 그의 눈에 비친 초미니 돔구장은 국제대회를 치르기에 부적격이었다. 고척돔보다 무려 28년 전인 1988년 지어진 일본 도쿄돔만 해도 5만명을 수용하는 일본 야구의 심장이자 다양한 이벤트를 열 수 있는 다목적 스타디움이다.

대만 감독은 고척돔에서 첫 훈련을 마친 뒤 “조명이 어둡다”고 했다. 사실 고척돔의 관중석 규모나 조명은 지난해 KBO리그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고척돔을 홈으로 사용한 넥센은 관중수가 2015년 목동구장(51만802명)보다 53%(78만2,121명) 증가해 고척돔은 프로야구가 사상 첫 800만 관중(833만9,577명) 시대를 여는 데 큰 공을 세운 효자로만 부각됐다.

그들의 ‘뜨끔한’ 지적에 잊고 있던 ‘애물단지’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고척돔은 2006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디자인 산업의 메카'로 동대문운동장을 지목하면서 시작됐다. 그 해 10월 오 전 시장은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만평 규모의 다목적 공원과 디자인 패션 콤플렉스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야구인을 비롯한 체육인들은 “야구, 축구, 육상, 수영 등 모든 경기가 열린 한국스포츠 발전의 산 증인으로 한국 스포츠 역사를 대변하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할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서울시는 2007년 12월 철거를 강행하면서 대체 구장 부지로 고척동을 제시했다. 탁상 행정을 거듭하던 서울시는 소음과 교통난을 우려하는 민원이 제기되자 하프 돔구장으로 슬쩍 설계를 변경했다. 그러다 2008년 한국 야구가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2009년 WBC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돔구장 필요성이 제기되자 서울시는 마치 선심 쓰듯 완전 돔구장 형태로 설계를 변경했다. 지붕을 덮어 소음을 해결했을지 몰라도 최악의 시장성과 접근성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인근 도로는 만성 정체 구간인데다 주차 공간이 협소하고 대중교통(지하철)을 통한 접근도 쉽지 않았다. 서울 연고의 프로야구단 3팀(LGㆍ두산ㆍ넥센)이 국내 첫 돔구장이라는 프리미엄에도 서로 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다.

고척돔에서 열린 WBC 1라운드 A조 6경기에서 입장 관중은 총 5만2,286명에 그쳤다. 평균 관중은 8,714명. 관중 점유율 역시 51.9%로 절반을 겨우 넘기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는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 WBC 역대를 통틀어 본선 라운드 최소관중 기록이다. 그마저도 한국이 아닌 경기는 관중석이 텅텅 비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회 유치를 권유한 WBC조직위원회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스폰서 계약에 어려움을 겪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 열기만 안방에서 재현된다면 시너지효과는 무궁무진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충격적인 탈락을 하면서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국제대회를 자신 있게 유치할 수 있으리라고 잠시 착각했던 고척돔은 야구인들과 야구팬들의 검증에서 배제된 전시행정의 애물단지였다는 사실만 상기시켰다.

2015년 말 박원순 서울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한 시민의 야구 투자에 대한 질문에 “잠실야구장, 제대로 된 돔구장으로 만들 생각입니다”라고 답했다. 대권 도전도 포기한 만큼 정말 제대로 된 돔구장을, 아니 꼭 지붕을 덮지 않아도 되니 제대로 된 야구장을 야구인들에게 선물하기 바란다. 성환희 스포츠부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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