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8인이 한 뜻으로 정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10일 생중계로 온 국민에게 전달되면서 그 동안 난무하던 낭설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특히 몇몇 재판관이 ‘기각’ 의견을 낼 것이란 풍문이 근거 없이 거리와 휴대폰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당사자로 지목된 재판관들을 괴롭혔다.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과 지명자 등을 토대로 나돈 억측은 탄핵정국을 한층 더 어수선하게 했다.
탄핵기각설은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퇴임 후인 2월 초부터 정치권 등에서 나돌았다. 특히 재임기간 사건의 판단 등으로 성향 좌표가 오른쪽에 있다고 분류된 재판관들이 기각표를 던질 것이라고 낙인 찍혔었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며 대법원장 추천을 받은 한 재판관을 중심으로 여당(옛 새누리당)의 추천 몫으로 헌재에 입성한 재판관도 기각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설이 돌아다녔다. 재판관 8인 체제가 되면서 2명 넘게 기각 의견이 나와 박 전 대통령이 기사회생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더욱 부추긴 것이다. 그 두 명의 재판관에다 여권이 기각에 못을 박기 위해 또 다른 재판관 한 명에게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섰다는 말도 더해졌다. 여권이 접촉했다는 설의 당사자는 박 전 대통령이 지명했던 재판관이었다.
기각설은 선고가 임박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대통령이 지명한 남은 한 명의 재판관도 “기각 쪽으로 돌아섰다”는 버전까지 등장하게 됐다. 심지어 이들 재판관들이 “대통령을 탄핵할 정도로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댈 것이란 얘기도 돌았다. 대통령이 추천했던 재판관들은 변론이 이뤄질 당시 최순실(61)씨의 국정개입 사정을 잘 알 것으로 지목된 증인들에게 질문하지 않는다고 의심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온갖 설들은 재판관들의 평의 내용이 비밀에 부쳐진 까닭에 난무하게 됐지만 결국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이런저런 억측과 이야기들은 탄핵심판 선고 당일 산산조각이 났다. 재판관 8인은 큰 이견 없이 전원일치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그간의 속앓이가 심했던 듯 일부 재판관들은 사석에서 루머에 시달린 고충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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