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책 구매에 미치는 영향 커
화제성 등 초기 시장 선점에 유리
지난 주 출간된 화가 황주리의 그림소설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노란잠수함 발행)은 전혀 다른 두 버전의 표지로 제작됐다. 남녀가 입맞춤하는 모습에 가시 돋친 선인장이 포개진 흑백 표지를 직접 디자인했던 황 작가는 출판사 제안으로 화사한 색채의 표지를 하나 더 그렸다.
역시 지난 주 출간된 프랑스 작가 에르베 기베르(1951~1991)의 에세이 ‘유령 이미지’는 4개 버전의 표지로 나왔다. 출판사는 조각 같이 생긴 그의 흑백사진은 표지에 똑같이 쓰되, 책 제목, 저자, 번역가 이름을 각각 무지개, 빨강, 파랑, 노랑 박(글자색 가공)으로 나눠 인쇄했다.
출판 불황으로 각종 튀는 마케팅이 줄을 잇는 가운데, 이제 ‘표지’가 출판계 대세 마케팅 수단으로 등장했다. ‘한 책 여러 표지’ 같은 다소 파격적인 방법부터 고전들의 리커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되는 추세다.
‘한 번, 단 한 번…’을 편집한 출판사 노란잠수함의 김성은 편집자는 “황 작가의 소설은 각 챕터마다 그림을 먼저 그리고 그림에 맞춰 이야기를 쓴 독특한 방식의 소설”이라며 “특징을 알리는 방법으로 표지를 여러 버전으로 만들기로 했고, 20~30대 젊은 독자를 타깃으로 감각적인 흑백 표지를, 연령대 높은 독자를 위해 따뜻한 느낌의 컬러 표지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흔치는 않은 시도에 우여곡절도 겪었다. 표지별로 각 1,500부씩 초판 3,000부를 찍는데 평소보다 15%정도 비용이 더 들었다. 무엇보다 “내용도 저자도, 순서도 똑같은 책에 두 ISBN(국제표준도서번호)를 부여할 수 없다”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의견에 따라 두 버전의 표지가 한 가지 ISBN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김 편집자는 “오프라인에서는 취향에 따라 표지를 고를 수 있지만 현재 온라인서점에서는 표지를 무작위로 배송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유령 이미지’는 국내 첫 소개하는 작가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어필하기 위해 4가지 표지를 선택했다. 출판사 알마의 민구 편집자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의 연인인 에르베 기베르는 동성애적 정체성이 작품에도 영향을 준 작가”라며 “작가 특성과 출판사의 실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일곱 가지 무지개 박이 들어간 표지를 제작하다 무지개색깔 중 빨강, 파랑, 노랑 박을 추가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추리소설 ‘스텝’의 표지를 두 버전으로 냈던 경험도 4개 표지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출판사는 ‘유령 이미지’ 2쇄를 찍으면 6개 표지를 만들 계획이다.
‘한 책 여러 표지’의 시초는 지난해 복간본 열풍으로 주목받은 ‘리커버’(기존 책의 표지 디자인을 새롭게 해 재출간된 책)다. 지난해 초반본 표지로 찍어낸 ‘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소와다리 발행)가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며 무려 20만부 판매를 기록했고, 지난 12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 역시 출간 30주년을 맞아 일본 초판본 표지를 그대로 본딴 ‘노르웨이의 숲 30주년 기념 한정판’(민음사 발행)을 출시, 출간 한 달 만에 판매량이 빠르게 늘어난 바 있다. 고전 도서뿐만 아니라 ‘미움 받을 용기’(인플루엔셜 발행),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한빛비즈 발행) 같은 신작 베스트셀러 도서도 리커버 에디션으로 한정수량을 재출시한 바 있다.
출판계 ‘표지 마케팅’에 대해 김성은 편집자는 “작가의 이미지, 신작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데에 표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젊은 독자일수록 표지가 책 구매에 미치는 영향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알마 출판사 민구 편집자는 “여러 개 표지가 반드시 판매로 이어진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화제성이 커 언론 주목도, 서점에서의 노출 빈도 등이 많아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유리한 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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