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가정용 인터폰 첫발
불량품 전량 리콜하며 신뢰 입증
수출 비중, 총 매출의 절반 넘어
매출 10% 이상을 연구개발 투자
가전기기 원격제어 시장까지 진출
변변한 애프터서비스(A/S)제도도 없던 1970년대. 가정용 인터폰을 만드는 중앙전자공업(현 코맥스)의 젊은 30대 사장은 회사의 명운을 건 결단을 내렸다.
판매했던 제품에서 불량이 발생하자 아무 조건 없이 이를 전량 무상 교체 해주기로 한 것이다. 요즘 개념으로 보면 전면 리콜을 실시한 셈인 데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기업이 당시 이 같은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회사를 49년째 이끌고 있는 변봉덕(78) 코맥스 회장은 "무상교체 실시로 자금사정이 나빠져 회사가 부도가 날 수도 있었지만 우리 제품을 사준 고객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며 "당시에는 판매한 제품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 외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변 회장의 결단은 결과적으로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신의 한 수가 됐다. 리콜 실시로 ‘저 회사 제품은 믿고 사도 된다’는 입 소문이 퍼지면서 오히려 제품 판매가 그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던 것이다.
변 회장은 "고객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가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며 "이 가치는 지금도 코맥스의 가장 중요한 경영 철학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코맥스가 70년대 만들었던 가정용 인터폰은 지금으로 치면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최첨단 전자제품이었다. 집에 전화기가 많지 않던 시절 대문 앞 현관에 달려 있는 인터폰은 최상위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러다 보니 좁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회사를 키워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가 인지도가 아프리카 르완다와 비슷하던 당시에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 제품 납품처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사흘이고 나흘이고 1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회사 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지도를 보여주면서 이역만리서 날아왔다고 하니 결국 만나 주더라구요.”
변 회장의 경영철학인 ‘고객에 대한 신뢰 지키기’ 는 수출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저렴한 비용에 높은 품질과 확실한 사후관리 등 코맥스의 강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변 회장은 “당시 수출품은 코맥스만의 제품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품이나 다름없었다”며 “우리 제품이 나라의 얼굴이라는 생각으로 제품을 만들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고 말했다.
수출물량이 늘면서 코맥스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80년대 영상시대가 본격화 되면서 목소리만 전달해주는 인터폰만으론 세계시장에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변 회장은 생존을 위해 주력제품을 교체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또 한번 띄웠다. 그는 “외국서 비디오폰 등 영상통신기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며 “하지만 수년간의 기술개발 끝에 흑백 비디오폰과 컬러 비디오폰을 개발해 무난히 수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코맥스의 변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70년대 인터폰, 80년대 비디오폰에 이어 2000년대 들어서는 인터넷 기술이 접목된 홈네트워크 제품을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해 가정용 기기들을 원격제어하는 스마트 홈 관련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기술 진화에 따른 코맥스의 변신은 탄탄한 기술력이 있어 가능했다. 변 회장은 비디오폰을 만들던 80년대부터 새로운 기술력 확보를 위해 매년 연구개발(R&D)에 매출의 10%이상을 투자해오고 있다.
변 회장은 “코맥스는 R&D 인력이 전 사원의 25% 이상일 정도로 기술력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탄탄한 기술력이야 말로 강소기업의 가장 강력한 생존 무기”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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