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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작동 원리 온몸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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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작동 원리 온몸으로 느꼈다”

입력
2017.03.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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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간 20번째 집회로 마무리

“세상 바꿨다는 사실에 뿌듯

당분간 검찰 수사 등 지켜볼 것”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 환영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인용 결정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 환영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탄핵인용 결정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0월29일 3만 명 시민과 함께 시작했던 촛불집회가 11일 열린 20번째 집회로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5개월간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하던 시민들은 이날 집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에서 다시금 희망을 보게 됐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1차에서 20차까지 열린 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 등 구호를 함께 외쳤던 시민이 1,600만명에 달한다고 12일 밝혔다. 지난해 11월12일 3차 집회에서 참가자가 처음 100만명을 넘어섰으며, 11월 26일(5차)에는 130만 명, 박 전 대통령 탄핵 국회 표결을 앞두고 열린 12월 3일(6차)에는 170만명까지 참가자가 늘어났다. 6차 집회에는 법원이 이례적으로 청와대 앞 100m 구간까지 집회 및 행진을 허용하면서 촛불집회는 절정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광화문광장에서는 경찰과의 충돌로 인한 부상자나 입건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등 구호는 여느 집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집회는 내내 평화 분위기를 유지했다. 한 시민은 “시위나 집회라고 하면 경찰과 싸우고 그러면서 누군가는 다치고 (경찰에) 붙잡혀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엔 달랐다”며 “그만큼 시민의식이 성숙해 있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마지막 촛불집회가 열린 11일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도 입을 모아 “우리의 힘으로 이뤄낸 일이, 우리의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기억하는 지난 5개월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에 가장 분노한다는 주부 서진희(54)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탄핵이 결정되던 날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이 다 같이 기뻐할 때”라며 “얼굴도 모르는 시민들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감동은 평생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드카드 대학생실천단’ 소속 남지은(23)씨는 “광장이 비워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며 “모르던 이웃들과 모여 세상을 바꿨다는 사실이 뿌듯하다”며 웃었다.

그간 집회에 한 번도 가지 못한 시민들도 11일에는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6세, 4세 아들과 함께 참석한 황상윤(36)씨는 “일과 육아 핑계로 한 번도 와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다”며 “업혀있는 이 아이에게 우리나라가 살만한 나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가 집회에 나오기 위해 일부러 근처 호텔을 잡았다는 박용환(79)씨와 박성자(75)씨 부부는 “80년대 시위에만 참석해보다가 40여년 만에 광장에 돌아오니 시민들이 훨씬 잘 하고 있다”며 “이번 일로 꼭 민주주의가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수 시민들은 이번 탄핵 결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시에서 온 박진석(58)씨는 “작년 12월 3일 최대 인파가 모였던 걸로 아는데, 그 때는 정말 뭔가 이뤄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이전 촛불집회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회사원 이명호(37)씨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원리를 온 몸으로 느낀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당분간 스스로의 손으로 이뤄낸 값진 성과를 지켜보며 감시할 예정이다. 아직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의 처벌과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등 해결되지 못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검찰 수사 상황도 지켜볼 생각이다. 그래도 시민들은 낙관한다. 70대 집회 참가자 이명상씨는 “참 긴 겨울이었지만 앞으로는 오늘 날씨만큼 따뜻해지겠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어린이가 불빛으로 만든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라는 문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어린이가 불빛으로 만든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라는 문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경기 광명시에서 6살짜리 아들과 함께 11일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황상윤(36)씨는 "아이들에게 당당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경기 광명시에서 6살짜리 아들과 함께 11일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황상윤(36)씨는 "아이들에게 당당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촛불집회에 20번 모두 참석했다는 대학생 남지은(23)씨가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미술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반석 기자
촛불집회에 20번 모두 참석했다는 대학생 남지은(23)씨가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미술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반석 기자
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박용환(79)씨와 박성자(75)씨 부부는 11일 처음으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곽주현 기자
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박용환(79)씨와 박성자(75)씨 부부는 11일 처음으로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곽주현 기자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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